꿈을 대신 버려주기
작년, 암스테르담의 교환학생일 적이다. 친구의 꿈을 쓰레기통에 대신 버려준 얘기. 봄학기 동안 가장 가깝게 지내던 독일친구 프란치스카에게 그녀의 친구를 소개받았다. 헝가리에서 온, 역시 교환학생이었던 비라그. 나랑 동갑이었던 그 애의 갈색의 긴 속눈썹이 눈주위에 인형처럼 박혀있었다. 쳐졌으면서도 크고 귀여운 눈매, 자신이 그 날 직접 잘랐다던 삐죽빼죽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어울렸던 녹빛의 갈색머리, 비쩍 말라 드러난 쇄골이 매력적이었던, 팔다리가 길쭉길쭉했던 몽상적인 아이. 비라그는 펍에서 연신 담배종이에 침을 발라가며 담배를 말아피웠다. 울룩불룩한 담배가 에곤 쉴레의 線모양과 꼭 같았다. 나와 비라그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며, 친하게 지내라고, 프란치스카는 말했다. 이후 프란치스카가 우리 동네를 왕래할 때마다 한 자리에 만나 대화가 깊어지며 친구가 됐다.
비라그의 방을 떠올리자면 벽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자신의 그림들, 걸려있던 잔잔한 꽃무늬의 속옷들, 컬러스타라는 헝가리의 사이키델릭풍 전자음악,이 흐른다. 헝가리 출신이지만 독일에서 학교를 다닌 그 애는 독일어도 잘하고, 독일어와 비슷한 네덜란드어도 잘한다. 부다페스트의 대학에서 네덜란드어 전공을 한댔다. 자연히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은 네덜란드어가 지루하고 싫다, 왜 전공으로 택했는지 알 수 없고, 더군다나 네덜란드 날씨는 축축하고 우울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딱딱할 뿐이다. 하루빨리 따뜻한 부다페스트로 돌아가고 싶다던 그 애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유일하게 눈을 빛내던 것은 그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수작업 애니메이션,이란 것에 빠져있었던 비라그. 매우 기초적이고도 최소한적인 방법으로 장면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어 컴퓨터 동영상 프로그램으로 장면전환하는 것이다. 바탕그림 위에 천, 털실, 종이 등으로 만든 캐릭터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표정을 바꿔가며 일일이 내용을 짜나가는, 한편으론 아마추어적인 방식. 5월, 드디어 따뜻한 직사광선을 공중에서 느낄 수 있을 무렵, 집 주변으로 산책이나 과제를 하러 나가면 때때로 색연필뭉치를 들고 뭔갈 스케치하는 비라그를 마주치곤 했다. 그 앤 집으로 돌아갈 6월을 기다리며, 나는 나대로 여름방학을 기다리며, 포근하고도 피곤한 일상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한동안 바빠서 왕래가 없었다. 어쩌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그 앤 수업을 많이 빼먹고 방에서 작업을 하거나, 갤러리들을 쏘다니는 생활을 하는 모양이었다.
학기가 얼추 마무리되고 비라그는 말했다. 로테르담에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대학에 지원을 했다고. 그간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힘들었단다. 다니던 학교는 공부도 지겨운데 관둬버리고. 인터뷰를 하러갔는데, 웬 동유럽의 여자애가 이젠 잘 쓰지않는 수작업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나 다들 놀라워하더란다. 그녀는 초조하게 막 시작한 방학을 맞았다. 조금 후에 프란체스카로부터 전해들었다. 비라그가 합격했다고. 들뜬 그 앤 부다페스트에 방학동안 있은 뒤 돌아올 로테르담의 거처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되레 뿌듯했던 난 내 친구들에게 비라그를 데리고 소개시키고 다녔다. 그리고 조금 더 후에, 9월 달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만 맡아달라고, 우리 집에 상자 하나와 큰 캔버스 파일 하나를 가지고 찾아왔다. 돌아올 때까지만 맡아달라고. 그리곤 부다페스트로 돌아갔다. 물건들은 내 방 한쪽 자리를 차지했다.
가을학기가 시작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메신저나 메일로 몇 번이나 안부를 물어보고 답장을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것으로 끝이었다. 독일에 돌아간 프란체스카도 나에게 묻길, 비라그에게 연락이 되냐고.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은 듯도 싶었고, 메일이나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는 듯도 싶었다. 궁금증에 못이긴 난 상자와 파일을 어느날 열었다. 상자에선 베개나 양념가루, 인형, 물감 그리고 책이 쏟아져나왔고 큰 파일에선 그 애의 그림들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한참을 넘겨보았다. 꽤 많았다. 잘 그린 그림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잔뜩 움츠린 자신의 형체를 그린 수많은 자화상, 남자의 얼굴, 온갖 낙서와 글과 정물그림들, 애니메이션 배경의 부분들. 스케치북의 2006년,이라고 쓰여진 연필흔적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꼭 주인이 다시 찾아와 데려갈 아이들이라고. 물건들은 다시 원래 있던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간은 바쁘게 흘러 겨울. 나에게도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귀국하기 며칠 전. 이미 방 벽에 붙어있던 스크랩들, 엽서들은 다 떼어지고 가져가지 않을 물건은 친구들 집으로 옮겨지고 한국으로 같이 갈 짐가방은 거의 채워졌다. 방을 텅 비워야 했음에도 끝까지 나의 물건도 아닌 남의 물건을 버릴 수는 없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점점 짜증과 분노로 변해갔다. 나한테 이런 일을 하도록 만들다니. 나한테 어쩜 일말의 답도 안주다니.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하라고. 끝끝내 그림이 든 파일은 못버리고 있다가 방을 떠나는 하루 전에 처분해버렸다. 너무나 화가 나서 집 앞의 쓰레기통 더미에 내던져 버렸다. 어떤 그림은 찢어졌다. 방에 돌아와선 무응답일 것임을 알고 있는, 네덜란드 식의 딱딱한 통고 식의 마지막 메세지를 보냈다. 그 애의 꿈도, 관계도 버려졌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차라리 타인,그것도 아무런 상관조차 없는 사람에 의해 버려졌으면 했던 걸까. 그림을 우편으로라도 되돌려 받고 싶지 않았던걸까.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비라그가 너무 미웠다, 당시에는. 하지만 이젠 이미 주변에서 쓰레기통에 직접 버린, 혹은 역시 타인에 의해 버려지는 꿈들을 많이 본다. 나도 하나씩 버리고 때론 우연을 가장해 잃어버린다. 꿈이란 버리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조차도 없어진다면 맨 몸의 자신으로부터 더 이상 버릴 수 있는 것이라곤 목숨밖에 남지 않으니까. 그러니, 되도록 많이 만들고 많이 버리며 생을 지속해야 한다. 남의 손을 빌려 꿈을 처분하고자 하는 일은 비겁한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 친구가 뭘하든 잘됐으면 좋겠는 바램이다.
200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