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없는날, 홍대
어제 알피엠 수요강의를 듣고 왔다. 무지막지하게 바쁘지만 중요한 사항이 있기에 기록해 보련다.
문화기획자란 뭘까? 문화,라는 개념도 아리송하고 기획,이라는 것도 감이 안 잡히고 거기다 그게 일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의 자,가 붙었으니 말이다. 내가 대체적으로 갖고있던 문화기획자에 대한 느낌은 '문화예술을 조직화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는 형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문화예술이란 범위가 좀체 규정지을 수 없는 넓은 의미인데다가, 말이 좋아야 기획이지 실상 포장에 그쳐버리거나 혹은 아예 그런 기회가 흔하게 주어지지도 않는 일을 하는 기획자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프리랜서 종류다. 물론 사회전반에 흐르는 새로운 문화를 이전까지 없었던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의미에서라면 그야말로 '예술가로서의 문화기획자'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지만 문화(예술)의 기획, 혹은 고급문화의 대중문화化/대중문화의 고급문화化라는 줄타기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아티스트라고만 보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문화기획은 관심을 조금 접었다. 아무래도 문화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내 시각과 취향부터가 매우 한정되어 있단 걸 느낀다. 또 뭐, 살면서 여러 생각갖고 살면 기회가 오는 날이 있겠지 그걸 직업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아무튼 '문화'든 '기획'이든 이 단어종류들이 요즘의 트렌드를 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감독님이 작년에 기획하신(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홍대 서교동의 '나이없는 날'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문화현상에대한비평적글쓰기 수업에서도 다루고 있는 '도시문화'라는 주제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기본적 아이디어는 지역문화와 그 지역주민들의 소외에서 출발했다. 홍대 앞은 인디밴드, 클럽, 카페 등의 지역적 특색이 뚜렷한 곳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어우러내는 문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상 우리 젊은이들은 그 문화란 층위에서만 홍대지역을 소비하고 생산할 뿐 지역공간과 소통하지는 않는다. 그 공간을 집으로 삼고 있는 지역주민들은 우리가 말하는 '홍대 앞'이라는 말의 내포(코노테이션)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것을 다시 붙잡아 보려는 것이 '나이없는 날'의 시도가 아닌 가 싶다. 홍대 앞의 문화는 '언더'이고 기존의 관습, 관념을 깨는 '예술적', '실험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것은 나이든 층을 배제하는 젊은이 문화다. 시청한 영상 중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나이가 육십 세이신 서교동 주민 아주머니가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클럽이야. 나도 거기서 젊은이들처럼 한 번 놀아보고 싶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우리 엄마도 옛날에 고고장도 가고 그랬었다고 그러셨는데, 정말로 중장년층을 위한 땐스장은 어디있는가 싶다. 끈적끈적한 나이트말고 오직 춤과 노래만을 위한. 작년 '나이없는 날'의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변신타임'이라해서 펑크족 머리를 하시고 육 칠십년대 교복을 입으시고 등등 변신을 하셔서 길을 나서시는데, 정말 즐거워보이셨다. 그리곤 홍대 주변 카페와 인디밴드공연장, 클럽을 하루에 도시는데 또한 정말 잘들 노시더라. 우리 나라의 나이를 구분하는 문화가 얼마나 배타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지 단밖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 아빠도 놀자하면 완전 열심히 노시는 분인데, 엄마랑 아빠랑 같이 클럽가면 얼마나 재밌을까 웃음이 난다. 이번 4월 23일 '나이없는 날'엔 잔다리 사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인디밴드의 데뷔공연이 있을 예정이란다. 놀라운 것은 멤버 나이차가 상당히 많이 나고, 나이 많은 분들의 경력은 30년 동안 피아노 선생님, 기타를 오랫동안 배우신 정년퇴임하신 공무원 분 (한 분은 까먹었네) 으로 정말 엄청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 도시지역에서 출발하는 아이디어, 흥미롭다 흥미로워.
2009-04-09
+ 이어서 2009년 4월 23일에 열렸던 홍대 앞 '나이없는날'에 다녀왔었다.
높은 분들(? 누군지 몰라서...)도 오시고 방송국에서도 많이 왔었다. 서교동 주민 아주머니 아저씨(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계셨다)가 활발하게 참여하시는 모습이 좋았고, 특히나 오후 4시 경 부터 시작된 클럽 베라에서의 모두가 다 어우러진 댄스파티는 내 인생에서 몇 안되었던, 비현실적인 느낌이 현실이었던 그런 시공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심으로 꾸준히 잘 이어나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