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의 단편, <젊은 모색>전
3월 8일까지 과천현대미술관에서 <젊은 모색/Young Korean Artists>전이 열린다.
모든 작가들의 이름이 생소했다. 오석근, 고등어, 이은실, 나현, 위영일, 김시원 등의 17명. 공부를 덜한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새롭고 떠오르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선정하려고 한 것이 전시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전시의 영문이름인 Young Korean Artists는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현대미술의 부흥과 강세를 이끌어 온 Young British Artists(YBA)란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YBA 중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게 허스트와 에민인데, 이 둘 만해도 YBA의 파격성은 말하지 않고는 못 넘어갈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젊은 모색>전이 YBA의 경우처럼 한국현대미술을 휩쓸어갈 원동력이 될 수 있을런진 모른다. 하지만 전시, 소통의 기회와 이 '젊은 힘'은 비례하는 것이라 생각하므로 좋은 출발점이라 본다.
심심했던 작품들은 언급하기도 그렇고, 흥미롭고 '강했던' 작품만 슬쩍 기록해야겠다. '고등어'라는 작가의 그림은 일러스트처럼 화려한 색상에 귀엽고 단순화된 캐릭터들이 난무하며 처음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한 파랑, 강한 빨강, 보라 등 내가 환장하는 색감들로 가득 구성되어 있는데, 이 눈을 어릿어릿하게 하는 아름다운 색들의 배합은 우선 눈을 끌어당겨놓고는 '과연 아름다운 내용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만든다. 일러스트가 아기자기한 색과 그림으로, 편안하고 무난한 내용을 담고 묻어가는 형식이라면 고등어의 화폭은 한마디로 '잔혹동화'다. '여성임'을 여성의 음부노출, 새파란 양복을 입은 남성캐릭터와의 대치, 옷, 피의 이미지를 담고있는 붉은색의 사용 등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회적이지 않고 까발리는 식이며, 묘사된 캐릭터들의 얼굴처럼 무표정이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것이라면, 손 끝에서 나오는 창의력이 느껴질 정도로 독특한 발상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나오는 구상 뿐 아니라 붓과 펜에서 나오는 창의성과ㅡ특히 괴기함과 이상함을 불러일으키는 식의ㅡ무차별적인 놀림은 작품에 꼼꼼하게 빠져들게 했다. '쾌락의 정원'으로 유명한 보쉬(Hieronymus Bosch)의 작품을 숨은 그림찾기인마냥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것처럼, 그런 류의 괴기스러운 창의력이랄까나.
'나현'의 작품은 전쟁 속 기록에서 실종된 7명의 프랑스 병사를 찾는다느니, 어쩌구 하는 다큐멘터리적 이야기로 흐르는데, 사실 스토리보다도 그에 대한 다양한 표현 방식 중의 하나였던 '물 위에 그림 그리기'가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그 행위가 나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물 위에 퐁뇌프 다리인가를 물감으로 그리는 것을 영상으로 찍었다. 작가가 크게 한붓을 그리고 나면 물은 잠시동안 물감을 품고 있다가 다른 붓질에 의한 수면파동에 떨려 부서지고 만다. 요즈음의 나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비춰졌다. 한 꿈을 품었다가도 다른 붓질에 의해 흔들리고 사라져버려 어디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는 상태의 연속. 다의적인 해석이 입혀질 수 있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시원'의 벽에 붙은 A4용지들이 날 사로잡았다. 제품설명서도 아니고 밋밋하게 미술관 내벽에 프린트가 되어 있는 종이가 붙어있는데, 그 내역은 이러하다. 지인에게서 오만원짜리 그림을 부탁받았는데, 도대체 오만원짜리 그림이란 어떤 것일까 개념부터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재료비, 노동비 등을 매우 세세하게 계산하여 작가에게 19000원 가량 이익이 떨어지는 오만원짜리 '모눈에 그린 짧은 선'인가 뭔가 하는 역시 A4용지 크기의 작품이 완성됐다. 더욱 골때리는 것은 그의 다른 작품이었다. 작가가 쓴 작품의 의도를 직접 인용하자면: "전시요청이 왔고 고민 끝에 참여하게 됐다. 작업 제작지원은 파티션과 좌대, 조명, 페인트칠이 전부인 반면, 준비 기간은 2달 남짓, 책임져야 할 공간은 작년 개인전의 4배다. 어찌해야 할까? 오롯이 전시를 꾸려야 하는 상황에 신경만 더 예민해진다. 잠도 잘 못자고, 살도 빠지고. 해서 나는 전시-스트레스로 인한 신체변화를 미술관의 제작 지원조건을 이용해 전시로 되돌려 줄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밝혀놓은 전시글을 읽으면서 (죄송하긴 하지만, 좋은 뜻으로) '와, 역시 미친놈이 예술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김시원은 두 달동안의 몸무게 변화와 수면시간을 정말 꼼꼼히 표와 그래프 등으로 만들어 '가볍게' 전시해 놓았다. 난 이런 개념미술의 이성을 깨는 특징이 정말 좋다.
예술의전당에서 한다는 클림트 전 입장료가 만 육천원인가 한다던데 내겐 그런 류의 '브랜드' 화가보단 '3000원하는' 피가 훅훅 잘 도는 젊은 작가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더 컸다. 한국의 현대미술의 단편을 잘라보는 재미가 있었던 <젊은 모색> 전이었다.
2009-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