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추천받았던 영화 중 이름이 가장 만만해보이는 바닐라 스카이를 봄. 보고나니 스릴러 SF 영화! 이런 영화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생각을 하면서 봐야하는데, 멍-하니 그냥 멜로려니 하고 넘기다가 영화 후반부로 갈 수록 멘붕이 폭풍처럼 몰려오는 결과가... 자각몽을 사고팔 수 있는(결국 마약/환각제를 파는 거 아닌가?) 사회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주인공 남자(톰 크루즈)는 돈도 많고 이성들에게 인기가 많아 한 번 사랑나누는 건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자신을 좋아하며 따라다니는 여자(디아즈)가 보는 앞에서 새로운 여자(페넬로페 크루즈)에게 한 눈에 반하고 그녀의 집에 따라가서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 아침 그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디아즈의 차를 타게 된 톰 크루즈는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디아즈의 차에서 혼자만 살아남게 된다. 망가진 얼굴, 몸과 함께. (비록 톰 크루즈가 안됐지만, 카메론 디아즈가 차 운전대를 놓아버리고 옆 자리에 탄 그에게 막말을 퍼부을 때 엄청난 카타르시스!)
2001년이라 그랬는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 그랬는지 성형수술의 결과는 좋지 못했고, 험악해진 얼굴만큼이나 마음까지 삐뚤어져버린 그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Life Extension이라는, 사람을 냉동인간 상태로 만들고, 약물투여를 통해 끊임없이 행복한 자각몽(스스로 꾸며내는 꿈)만을 꾸게 하는 회사의 도움을 받은 톰 크루즈의 환상을 전개한다. 즉, 얼굴 수술이 잘 끝나 원래 모습과 일치하게 돌아오고, 결국 페넬로페 크루즈와 연인으로 발전하는 행복한 꿈이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그의 '양심'이 무의식중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톰 크루즈가 자신을 단순히 섹스파트너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살한 카메론 디아즈가 그의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죄책감에 휩싸인 그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죽여버리고, 비록 꿈 속에서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이 사실은 디아즈가 아닌 페넬로페 크루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의 달콤한 꿈은 악몽으로 바뀌어 버린다.
악몽을 꾸게 되어버린 주인공, 그러나 다행인 것은 어쨌든 꿈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꿈 안의 여러 자의식들(계약을 연장하여 더 그럴싸한 꿈을 꿀 것인지, 아니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과의 사투 끝에, 그는 진짜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는다. 꿈 속에서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높은 빌딩 위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이 현실과 마주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장면이 겹쳐졌다. 매트릭스를 다시 봐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very passing minute is the another chance to turn it all around"란 의미심장한 대사가 여러 번 나온다. 살다보면 사랑, 사람, 사회...로부터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게 인간이다. 그 상처받은 자신의 모습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살아볼 것인지, 혹은 추억과 후회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그럴수록 더더욱 미화되는 '~했더라면' 이후의 달콤한 상상에 만족할 것인지. 그 "passing minute"를 선택의 순간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인 것 같다.
영화 추천해주신 분께 감사의 말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