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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무 것도 안될 땐



아무 것도 안될 땐 일기나 쓰자.


규칙적인 생활에 살찐 것 같다. 일단 느낌은 그렇다. 11월 들어 운동을 못했다. 지난 달 지출이 수입을 초과해 요가를 못가고 있다. 한강에서 운동이나 하려했는데 날 추워서 잘 안된다. 


한강 주변에 사는 건 참 복받은 일이다. 지난 어느 밤 비온 뒤 한강을 혼자 걷는데 잘 세공된 다이아몬드처럼 한강물이 다양한 색의 빛들을 넘실넘실 반사하고 있었다. 예쁘다고 소리내어 말해주었다.


책 읽는 여자는 겁나 이쁘다. 책 읽는 남자도 겁나 멋있다. 근데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간혹 독서 중인 사람보이면 악수를 청하고 싶을 정도다.


친한 친구가 유기견을 떠안았다. 심장사상충에 걸려버린 다섯 살 갈색 푸들인데,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없다. 당분간 동물병원에 있다가 보호센터에 갈 예정이다. 도울 수 없는게 속상하다. 책이야 안 읽어도 그만, 빌려보면 그만이지만 친구가 떠안고 발만 구르고 있는건 생명인데.


또 다른 친한 친구가 또 카카오톡을 탈퇴했다. 어디갔니 아가. 고기를 구워먹으며 이런저런 얘기 다 했다. 친구는 내가 한 일들 전부 다 잘한 것이라 했다. 가타부타 이유없이. 이유도 없지만 고마와. 당신도 잘하고 있으니 돌아와. 


내가 보기엔 sns 등 빠른 커뮤니케이션 툴은 가까운 관계마저 피상적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몇만 킬로 떨어진 외국친구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아도 가까운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직접 만나서 눈을 보고 얘기하지 않는 이상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남들의 사생활과 생각을 단편적으로나마 훔쳐보기가 쉬워진만큼 자기 자신에게 더욱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존재감 상실의 위험에 대한 방어기제. 사실은 문명의 이기가 이 세상엔 너랑 비슷한 혹은 더 잘난 남들이 넘친다는 사실을 전세계적 범위로 확대해 알려주는 바람에 조선시대 청춘보다 더 흔들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얼굴모르는 조선시대 청춘보다 진짜 내가 더 아픈지는 만나봐야 알겠네.


몇 번을 차여도 끄덕없는 것이 신기한데, 이유는 어쨌든 그 이유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근데도 희망을 품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평행봉 위에서 균형잡는 연습이나 해야지, 또다시 멘탈 브레이크다운 오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어제 모의고사를 본 막내와 함께 내 고3 시절 다이어리를 꺼내봤는데 한마디로 웃프다. 온갖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인용구와 목표를 여기저기 써놓았다. 그걸 쓰고 있는 정반대 상황의 내가 그려졌다. 까마득하다. 그리고 정말 잘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