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비애가 가득한 중세의 가을
―『중세의 가을』을 읽고
1. 들어가며
『중세의 가을』속의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세계문학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다. 근대 세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소설에 심취한 나머지 ‘잠은 부족하고 독서량은 많다보니 뇌수가 말라붙어 건전한 판단력을 잃게 되었’다. 중세의 향수를 간직한 돈키호테는 편력기사를 자처하고 여러 가지 황당무계한 일을 벌인다. 정의를 위해 싸우고 ‘둘시네아’ 공주를 열렬히 사모하는 기사의 모습은 기사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 『돈키호테(원제 ‘라 만챠의 재치있는 시골양반 돈키호테’)』가 비록 기사소설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중세의 기사도 정신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근대의 문턱에서 중세 시대를 찬양한 마지막 작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세의 기사라는 모티프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고 있다. 유명한 온라인 게임들이 기사와 원정의 스토리 형식을 갖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우리가 막연한 동경심을 갖는 동시에 암흑의 시대라고도 부르는 중세란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의문을 품게 된다. 최대의 문화사가로 평가받는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은 이런 중세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그려내고 있다. 문화라는 코드로 중세에 접근하며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안에서 돈키호테를 만나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이행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2. 책 내용
이상주의의 판타지
중세의 현실은 비참했다. 유럽인구의 약 3분의 1을 앗아갔던 흑사병은 중세인들에게 언제 내릴지 모르는 공포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환멸과 회의로 가득찬 페시미즘’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바로 그 안에서 ‘아름다운 삶에의 열망’이 싹텄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면서도 수긍이 가는 면이다. 중세인들은 이상적 삶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세계에 대한 거부도, 혹은 세계를 개선시키려는 시도도 아닌 ‘꿈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중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나타난다. 집도 풍족하지 못하고 몸도 늙어버린 돈키호테가 영예와 사랑을 위해 편력기사의 길을 떠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중세의 사람들은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용기, 명예, 사랑 그리고 종교와 같은 ‘아름다운 이상’에만 집착하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조차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비단 천처럼 말이다.
중세의 낭만, 기사도
기사도가 무엇이기에 돈키호테가 갖고 있던 땅을 팔면서까지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걸까? 호이징가는 기사도의 개념을 ‘환상과 영웅적 감동에서 나온, 그러나 외관에 있어서는 윤리적 이상을 담당한 하나의 미학적 이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봉건주의 사회라는 기반에 힘입어 무작위로 창설된 기사단들은 15세기에 들어서는 ‘일종의 고상한 유희’로 전락한다. 실질적으로 전투나 결투를 벌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라는 추상적 목표를 가진 낭만이 되어버린 것이다. 궁정과 귀족 계급내 사람들의 사고 속에 자리 잡았던 기사도적 이상은 영예에의 갈망과 영웅숭배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15세기 무렵 유희에 불과해진 기사도는 형식이란 껍데기만 남게 되고 이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일도 많이 벌어진다. '별 기사단 l'ordre de l'Etoile의 기사들이 전투 시 결코 4에이커 이상은 후퇴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이 이상한 맹세 때문에 그들 가운데 9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한 사례는 당시 맹세와 서약이 기사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잘 보여준다.
과장된 중세적 사랑
‘사랑없는 편력기사는 잎새와 열매가 없는 나무요, 영혼이 없는 육체와도 같다’고 읊는 돈키호테. 그만큼 기사도적 이상에서 사랑이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더 나아가 사랑에 양식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에의 열망에 대한 최고의 구현이라 생각되었다. 기사도의 수많은 맹세와 서약 말고도 중세의 형식주의는 사랑이라는 관념에도 일정한 양식을 부여했다. 극단적인 성의 방종함과 형식주의는 서로 배치되면서도 공존한다. 정숙한 척하는 궁정의 예의범절 속에서 『로망 드 라 로즈 Roman de la Rose』라는 관능적인 책을 옹호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장되고 형식화된 사랑의 양식화는 르네상스 시기가 도래하면서 비판받게 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의무적으로 숭배해야 할 귀부인을 상상해내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부풀려진 사랑의 형식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신앙의 퇴색
기독교 역시 중세말의 큰 특징을 이룬다. 호이징가는 당시의 삶이 종교로 가득차 있었고, 때문에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매순간 시야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면죄부’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기독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교적 관습, 의례와 의식은 중세말로 치달을수록 증가되는 경향을 보였다.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민중들의 종교에 대한 감정 역시 극대화되고 때론 환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나친 금욕주의와 기괴한 허식은 민중들의 일상적인 삶과 큰 괴리가 있었으며, ‘신에게 흡수된 영혼은 이제 의지가 없기 때문에 육체적 욕구를 따르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극단적 신비주의로까지 치닫기도 했다. 기독교가 주가 되었던 시대 말, 종교가 어떻게까지 미화되고 과장되었는지 여러 사례들이 말해주고 있다.
르네상스로의 이행
상징주의는 중세를 풍미한다. 왜냐하면 상징은 종교나 사랑의 개념들을 풍성하고 다채롭고 모호한 상태로 꾸미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과 이미지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까지 범람하게 되자 사람들은 서서히 이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상징주의는 진부해진다. 반면 르네상스의 바탕이 되는 고전주의는 하나의 형식으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정신으로써 인정받게 되었다. 중세의 특징과 대비되는 자연스러움, 사고와 표현의 확대, 인본주의가 공감대를 넓혀간 것이다. 몰락과 탄생이 한데서 이루어진 셈이다.
3. 책 밖에서
구성적 측면
단편적인 사례들이 끝도 없이 나열되고 있는 것이 『중세의 가을』의 특징이다. 책의 끝부분에는 엄청난 양의 ‘주 및 출처’ 페이지가 붙어있고, 어찌보면 이 책은 사실들의 제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다소 읽기에 산만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들을 읽고나면 그것들이 한 카테고리로 묶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나누어 언급한 ‘이상주의’, ‘르네상스로의 이행’ 등과 같이 말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실에서 시대적 관념을 추출해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료의 선택이라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태도에서부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이징가는 중세시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기 보다는 온갖 사례를 펼쳐 보임으로써 시대의 특징을 묶어버리는 귀납적 서술태도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독자가 거의 1차 사료라고 인정될 수 있는 역사의 재료들을 접할 수 있게 한 뒤, 역사가가 이를 마무리 짓고 있는 책의 구성 덕분인 것 같다.
시대의 전체적인 조명
『중세의 가을』은 역사서라는 느낌조차 갖기 어려웠다. 도대체 그냥 여러 잡다한 이야기들을 골라놓은 책 같기도 하고, 갑자기 시들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기존에 내가 공부했던 텍스트와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만 해도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혹은 ‘이씨왕조’ 등 지배계층의 변화가 시대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어떤 왕도, 귀족도 장(章)을 나누지 못한다. 호이징가는 단지 중세시대의 여러 특징들을 특정한 계급이 아닌, 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전체적인 중세적 특징들을 오히려 잘 조명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문화에 대한 주목
그 중에서도 그는 봉건주의와 같은 중세의 특징적인 사회구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기 스스로도 이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문명사는 단순히 주민의 수나 세금 따위만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꿈 그리고 로마네스크한 환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서술에서는 공식 자료를 넘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이해하려는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기사도, 삶의 양식, 종교, 문학과 회화를 하나씩 짚어감으로써 중세의 문화적 특징을 직접 밝혀내고 있다. 고등학교 국사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네 파트로 나뉘는데 문화 파트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소홀히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사학자들은 역사의 교훈적 기능, 현재성을 들먹이며 문화사를 현실 도피적 분야라고 비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 하더라도, 내가 향유하는 디지털 문화나 생활양식(대학이든 여행이든지간에)이 민주주의 같은 정치체제보다 나와 우리의 시대를 더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제17장 <실생활 속에 반영된 사고의 형태들>처럼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금언마저 역사 재료로 활용하는 그의 태도는 역사학자로서 매우 창의적인 시도로 비춰진다. 또한 호이징가의 회화와 문학에 대한 소양 역시 무척 뛰어난 듯하다.
4. 나가며
돈키호테의 죽음, 중세의 죽음
『돈키호테』 제2권 마지막, 돈키호테는 우울증에 걸린 채로 산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지독한 열병에 걸린 그는 마침내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와 산초에게 편력기사가 있다고 믿게 한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광기와 기사도적 이상에 날뛰던 그의 마지막은 이성을 찾고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중세의 죽음과도 닮았다. 『중세의 가을』은 14세기, 15세기라는 중세 후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의 쇠락을 여러 가지 형태, 여러 분야의 텍스트를 통해 조명해 내었다. 중세의 어두운 과거―마녀 사냥, 종교적 타락 등의 사회적 문제―의 비중이 작게 다루어지고, 주제가 너무 서정적으로 다루어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도 기존 역사학자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았던 데까지 멀리 나아가 사학의 지평을 넓혔다는데서 의의를 둘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중세의 죽음까지 가 보았듯이, 내 주변의 사소한 일들이 훗날 우리 시대를 묶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우리 시대의 앞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자세를 가져야 겠다.
2006-10-30 [사학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