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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첫연애의 문제점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말한다.
첫연애상대와는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나는 항상 자신만만하게 이에 응수했다.
당신이 이 세상 모든 인생 다 살아봤어?

그런데 이젠 알겠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좋아하고 말고의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첫연애의 문제점은 그 관계가 연애의 관계가 될 것인지 결혼까지 생각하는 진지한 관계가 될 것인지 전혀 깊이의 감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양쪽 다 경험이 없을 경우엔 더. 하지만 첫연애의 졸업딱지를 뗀 사람들은 알게된다. 이 사람은 가벼운 연애상대, 저 사람은 신중하게 생각해볼만한 결혼대상자. 그리고 그 촉에 맞춰 접근방법도 달라진다. 하지만 첫연애는 그런거 없다. 왔다갔다 갈팡질팡한다. 한없이 가벼운 마음이었다가도 결혼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이런 미숙한 정신상태는 재지않는 순수함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결국 혼돈의 상태로 종결된다. 사실, 결론은 관계를 시작할 때부터 미리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걸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점은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첫번째'라는 말은 '두번째'와 '세번째' 그리고 그 이후를 암시하는 단어다. 첫연애에 참가하는 당사자들 역시 말로 꺼내놓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내포된 의미는 점점 커진다. 다양성과 더 많은 기회에 대한 욕구는 정상적인 젊은이에게라면 당연히 있는 것이고, 그걸 부정하고 억압하기 시작하면 자기기만이거나 나이들어서 추한 모습 보이기 십상이다. 뜨거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 경험해본 사람의 인생이 더 풍요롭고 미련없이 깨끗하다. 아무리 현재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어도 (1) 좋은 것을 잘 몰라 불만에 차거나, (2) '그럼에도'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결론적으로 '이 사람하고는 결혼할 것 같지는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때가 분명히 적어도 한 번은 온다. 반면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경험부족으로 확신이 쉽게 서지 않는다. 어쩔 수가 없다. 뭘 경험해봤어야 좋은 걸 알 것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자하는 젊음을 누가 뭐랄 것인가. 결국 가문끼리의 정략결혼이 아닌 이상 그냥 헤어진다.

누구나 다 첫연애에서 미숙한 행동을 많이 하고, 초두효과에 의해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기 때문에 미련도 후회도 쩐다. 하지만 다시 이루어지기는 참 어렵다. 왜냐하면 어쨌든 사랑과 결혼은 타이밍이고 첫이별에서 멀어지고 나면 후에 이어질 각자의 연애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타임라인이 서로 꼬여버린다. 혹시라도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상대방의 옆자리가 비어있길 기대하는 것은 두 번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확률이 높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상대도 당신도 변해버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다시 만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도 사실은 깨끗이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편이, 고통스러워도 장기적으로 마음 편하다. 한마디로 첫번째 연애상대와의 결혼은 더욱 낮은 확률을 자랑하게 된다.

스물 여섯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아봤지만, 이 세상에서 진짜 똑똑한 놈들은 하버드생, 서울대생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진작에 자기가 뭘 잘하는지 빨리 알아차리고 하나만 파는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 연애를 많이 해보고 좋은 사람 빨리 만나 일찌감치 결혼해버리는 사람들도 똑똑한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어차피 스스로가 언젠간 결혼할 것이라고 알고있다면 조금이라도 젊고 예쁘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야지 늑장부릴게 뭐 있나. 주변의 젊고 예쁘고 똑똑한 여자들이 모두 일찍 결혼하거나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남자를 한 번 이상은 만나보았다. 하지만 중상의 평범녀인 나는 그냥저냥 일단 내 앞가림이나 잘 해야하는 것이다. 사실 이게 안풀리면 연애고 뭐고 다 필요없다.

결국 이 글은 첫연애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상황정당화 및 자기위안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도 첫사람이 좋은 사람이었어서 다행이다.
미련도 후회도 쩔지만, 이 사람에게 다시 갚아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런 미친 글을 더 나이먹기 전에 쓸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