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Francis Bacon, 1952
Photo: John Deakin
(from http://francis-bacon.cx/photo/portrait_1952.jpg)
현대미술관련 책을 처음 접하면서 빠져들게 된 프란시스 베이컨.
얼굴을 이리저리 뭉개트린 초상화에 매혹됐었다.
테이트 모던에선 거의 피카소랑 같은 부류(큐비즘)라고 써놓기까지 했던데.
(다각적인 면이 화면에 모두 구성되는 건 맞지만 그 구성목적이 조금 다른 것 아닐까 싶기도...)
끔찍한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을 보면 와 좋다, 대단하다, 는 말이 절로 나오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딱히 그것에 대해 시간을 할애한 적은 없다. 그냥 전율이 왔던 것 같다.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들뢰즈의 이론이 이 전율을 이해시켜줄 좋은 설명틀인 것 같다.
- 베이컨은 구상과 비구상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그는 정형도 비정형도 아닌 기괴한 형상le figural의 창조를 통해 구상성le figuratif을 파괴하려 한다. 그 결과 화폭에는 충격적 형상들이 발생하고, 이 형상들은 "두뇌를 통과[추상]"하지 않고 우리의 "신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한다.
- 실제로 그의 "그림 속에 그려지는 것은 신체다". 기괴하게 생긴 살덩어리들이다. 하지만 "그 신체는 대상으로서 재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푸줏간의 고깃덩이 혹은 전쟁이나 교통사고로 형편없이 뭉개진 인체 따위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형상, 즉 그 충격적인 형태와 색채의 효과로 우리를 감각의 체험 속으로 몰아넣는 어떤 모양일 뿐이다. [...] '잔혹함의 원본적 재현representation originaire'
- 베이컨은 종종 몸에서 얼굴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얼굴 없는 머리가 솟아나게 한다. "신체는 형상이기에 얼굴이 아니며 얼굴도 없다." 그 대신 "형상은 머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 얼굴에서 들뢰즈는 정치를 본다. "얼굴이 정치라면, 얼굴 해체하기 역시 정치의 하나다." [...] 얼굴을 지우는 것은 곧 유기체의 해체, 의미 작용의 해체, 주체화의 해체를 의미하게 된다.
- '감각의 논리' 아직 개별 감각들로 분화되지 않은 리듬 속에서는 "하나의 색, 맛, 촉각, 냄새, 소리, 무게 사이에 신경 흥분적인 존재론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 베이컨의 그림은 이 "감각의 원초적 통일성을 보게 해주고 복수 감각을 가진 형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나게" 해준다.
- 그의 작품에서 "혼합 색조는 형상에게 신체를 주고, 생생한 혹은 순수한 색조는 아플라[aflat 배경]에게 골격을 준다". 이 뛰어난 색채주의자는 이렇게 색채의 '변조'를 통해 눈의 만지는 기능을 회복하고, 그럼으로써 색체로 촉지적 효과를 내는 새로운 이집트인이 된다.
- B' -diagramme-> B" 디아그람은 이렇게 도상/상징/지표라는 전통적 분류의 어느 항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에 속한다. 바로 이 기호적 특이성에서 그가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얼마나 독창적인 회화의 길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정말로 비평 역시 작품의 형성에 처음부터 관여, 존재하는 가보다. 피부에 돋아나는 오돌도돌한 닭살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