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두개골이 도끼로 맞은 듯 찌릿하게 아파온다. 연극 <루시드 드림>을 보고나서 바로 극장을 뛰쳐나왔고, 도서관에 가려던 원래 계획과는 달리 연극을 본 감상을 모두 기록해 놓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집으로 직행해 왔다.
<루시드 드림>은 '극단 청우'의 스물 다섯번째 작품으로 5월 18일부터 6월 6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학기 수강하고 있는 '문화와예술의정신분석' 수업의 일환으로 오늘 3시 상연공연에 다녀왔다.
공연장에서 구매한 팜플렛에 쓰여있는 줄거리를 고대로 가져다 놓자면 이러하다.
상류층의 이혼, 간통, 음주운전, 재벌 2세들의 성폭행 같은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 최현석. 그에게 일주일 전 사망한 선배 김선규의 미망인이 책 한 권을 들고 찾아온다. 지금은 기억도 떠올리기 힘든 대학 선배인 김선규에게 선물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이 책은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그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최현석은 그 책에서 마치 김선규가 남긴 것 같은 암호를 발견한다. '죄와 벌'의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이 책의 종반으로 가면서 모두 이동원이라는 인물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 이동원은 선배인 김선규가 변호를 맡았던 인물로 모두 열 세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무엇인가 삶의 자극이 필요했던 최현석은 그에게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낀다.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최현석은 이동원의 변호를 자처하며 첫 만남을 갖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사실 사건의 발건에 지나지 않는다. 스토리의 주된 사건은 최현석이 이동원과 교도소에서 면회를 하는데서 시작한다. 이동원을 정신질환자로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했던 최현석 변호사는 도리어 이동원으로부터 '숙제'를 받기 시작한다. 첫번째 면담에서 그가 내준 숙제는 '자기(이동원)가 왜 그랬을까?'를 <죄와 벌>을 읽으며 그 살인충동을 공감해보라는 것이었다. 서재로 돌아온 최현석은 라스꼴리니코프가 손도끼를 옷 속에 숨기고 희열을 느끼는 부분을 읽으며 '상상살인'을 재현하게 된다. 그 자신에게도 놀랍게도, 살인충동의 대상은 다름아닌 그의 연인이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있는 연인을 앞에 두고 방백한다. 사랑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나 처음부터 '그 짓거리'들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 끔찍하여 떠나가질 못한다고.
두번째 숙제는, 첫번째 숙제를 잘 해왔으니(이동원은 변호사의 머리 꼭대기에서 심리를 모두 읽는다), 그걸 실제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최현석은 이에 발끈하며 이동원의 아픈 곳을 굳이 건드린다. 이동원의 친아버지가 어머니를 매우 학대했고 결국 어린 그를 버렸으며, 5세 때부터 그를 양아버지로서 키워주었던 인물은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 밑에서 컸다. 이 사실을 끄집어내며 '너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거다, 정신분열인거다. 그래서 살인을 저지른거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최현석의 참패로 끝이 나버린다. 이동원과의 면담을 통해 서서히 그의 논리가 최변호사의 머릿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끝내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최현석은 죽은 김변호사의 미망인에게 전화를 받고, 한 술집에서 술이 취해있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결국 미망인은 많이 취하고 최현석은 자기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이 때 그의 마음 속에 이동원이 등장해 '그녀도 너의 손길을 원할꺼야'라며 동요한다. 결국 최변호사는 술 취해 침대 위에 쓰러져있는 미망인을 애무하는데, 미망인이 저항하자 베개로 그녀를 질식시켜버린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잃은 그녀를 아무 택시 승강장에 버려둠으로써 결국 그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동원이 내준 숙제를 해낸 것이다.
최변호사의 또 다른 자아가 된, 범죄자 이동원이 속삭이는 모습 (사진출처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 무대구성에 드러난 장소와 심리
무대는 왼쪽이 침대가 있는 공간(주인공의 침실), 가운데가 책상이 놓여있는 서재 혹은 사무실, 오른쪽이 이동원이 수감되어있는 감옥의 면회실(책상 및 의자), 즉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침실과 서재 사이, 그리고 서재와 면회실 사이 각 뒤쪽에 '기억의 저장고'인 캐비넷이 붙어있다. 서재를 아우르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스토리 및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긴밀히 연결된다. 첫째, 서재/사무실은 주인공의 고민을 보여주는 '생각의 장소'다. 의자에 앉은 그의 뒤로 등장인물들이 '기억의 잔해'로 등장해 그에게 속삭인다. 최현석은 책을 읽고, 범죄의 심리를 읽으려 노력하고, 결국엔 덫에 빠져 자신의 정신을 이동원의 모양으로 대치시키고 만다. 둘째, 면회실은 그에게 있어 '일터'이자 '성공'의 장소다. 변호사로서 그는 직무를 다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만난다. 살인범이 매우 정상적인, 아니 정상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고력을 가졌음을 알게 되지만 자신의 임무와 성공을 위해 그를 비정상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역할을, 면회실이 그에게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제일 왼쪽의 침실은 주인공의 '욕망'이 나타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각 장소들의 역할과 구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조명이 한 쪽만을 확실하게 비춰주었다. 무대 위 역시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극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무대 위는 뒤쪽의 캐비넷에서 튀어나온 옛날 기억(장난감과 같은 소품)들로 어질러졌고, 주인공 및 다른 등장인물들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기며 대화를 하는 장면이 많아졌다. 즉 내면과 일과 욕망/사랑(친밀관계)의 구분이 점점 흐려지는 주인공의 심리를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 루시드 드림의 의미
자각몽.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현실이 꿈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현실 밖에는 사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상상하는 것과 실제의 차이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범죄자, 정신이상자(사이코패스)는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열 여덟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살인마가 '지극히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갖고 있다는 판결을 받는다면, 이 세상의 질서 및 도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소위 '정상인'들이 정상이기 위해서는 이동원이 매우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며,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것과 같은 지점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실천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작품 내적으로 보자면 범죄자 이동원이 꾸고 있는 꿈('난 내 운명에 살인이 허락되는지 알고 싶었어요')과 최현석이 꾸는 꿈(즉 성공하고자하는 욕망). 우리의 현실 자체가 꿈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루시드 드림'의, 살인자로부터 변호사로의 전이. 그리고 <루시드 드림>이라는 연극 자체가 꿈과 욕망으로 흘러가는 우리들의 삶에 잠깐의 브레이크를 거는 경험. 또한 얼마나 하나의 문학작품(꿈)이 살인욕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루시드 드림>은 '극단 청우'의 스물 다섯번째 작품으로 5월 18일부터 6월 6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학기 수강하고 있는 '문화와예술의정신분석' 수업의 일환으로 오늘 3시 상연공연에 다녀왔다.
공연장에서 구매한 팜플렛에 쓰여있는 줄거리를 고대로 가져다 놓자면 이러하다.
상류층의 이혼, 간통, 음주운전, 재벌 2세들의 성폭행 같은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 최현석. 그에게 일주일 전 사망한 선배 김선규의 미망인이 책 한 권을 들고 찾아온다. 지금은 기억도 떠올리기 힘든 대학 선배인 김선규에게 선물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이 책은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그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최현석은 그 책에서 마치 김선규가 남긴 것 같은 암호를 발견한다. '죄와 벌'의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이 책의 종반으로 가면서 모두 이동원이라는 인물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 이동원은 선배인 김선규가 변호를 맡았던 인물로 모두 열 세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무엇인가 삶의 자극이 필요했던 최현석은 그에게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낀다.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최현석은 이동원의 변호를 자처하며 첫 만남을 갖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사실 사건의 발건에 지나지 않는다. 스토리의 주된 사건은 최현석이 이동원과 교도소에서 면회를 하는데서 시작한다. 이동원을 정신질환자로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했던 최현석 변호사는 도리어 이동원으로부터 '숙제'를 받기 시작한다. 첫번째 면담에서 그가 내준 숙제는 '자기(이동원)가 왜 그랬을까?'를 <죄와 벌>을 읽으며 그 살인충동을 공감해보라는 것이었다. 서재로 돌아온 최현석은 라스꼴리니코프가 손도끼를 옷 속에 숨기고 희열을 느끼는 부분을 읽으며 '상상살인'을 재현하게 된다. 그 자신에게도 놀랍게도, 살인충동의 대상은 다름아닌 그의 연인이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있는 연인을 앞에 두고 방백한다. 사랑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나 처음부터 '그 짓거리'들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 끔찍하여 떠나가질 못한다고.
두번째 숙제는, 첫번째 숙제를 잘 해왔으니(이동원은 변호사의 머리 꼭대기에서 심리를 모두 읽는다), 그걸 실제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최현석은 이에 발끈하며 이동원의 아픈 곳을 굳이 건드린다. 이동원의 친아버지가 어머니를 매우 학대했고 결국 어린 그를 버렸으며, 5세 때부터 그를 양아버지로서 키워주었던 인물은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 밑에서 컸다. 이 사실을 끄집어내며 '너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거다, 정신분열인거다. 그래서 살인을 저지른거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최현석의 참패로 끝이 나버린다. 이동원과의 면담을 통해 서서히 그의 논리가 최변호사의 머릿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끝내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최현석은 죽은 김변호사의 미망인에게 전화를 받고, 한 술집에서 술이 취해있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결국 미망인은 많이 취하고 최현석은 자기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이 때 그의 마음 속에 이동원이 등장해 '그녀도 너의 손길을 원할꺼야'라며 동요한다. 결국 최변호사는 술 취해 침대 위에 쓰러져있는 미망인을 애무하는데, 미망인이 저항하자 베개로 그녀를 질식시켜버린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잃은 그녀를 아무 택시 승강장에 버려둠으로써 결국 그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동원이 내준 숙제를 해낸 것이다.
# 무대구성에 드러난 장소와 심리
무대는 왼쪽이 침대가 있는 공간(주인공의 침실), 가운데가 책상이 놓여있는 서재 혹은 사무실, 오른쪽이 이동원이 수감되어있는 감옥의 면회실(책상 및 의자), 즉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침실과 서재 사이, 그리고 서재와 면회실 사이 각 뒤쪽에 '기억의 저장고'인 캐비넷이 붙어있다. 서재를 아우르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스토리 및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긴밀히 연결된다. 첫째, 서재/사무실은 주인공의 고민을 보여주는 '생각의 장소'다. 의자에 앉은 그의 뒤로 등장인물들이 '기억의 잔해'로 등장해 그에게 속삭인다. 최현석은 책을 읽고, 범죄의 심리를 읽으려 노력하고, 결국엔 덫에 빠져 자신의 정신을 이동원의 모양으로 대치시키고 만다. 둘째, 면회실은 그에게 있어 '일터'이자 '성공'의 장소다. 변호사로서 그는 직무를 다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만난다. 살인범이 매우 정상적인, 아니 정상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고력을 가졌음을 알게 되지만 자신의 임무와 성공을 위해 그를 비정상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역할을, 면회실이 그에게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제일 왼쪽의 침실은 주인공의 '욕망'이 나타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각 장소들의 역할과 구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조명이 한 쪽만을 확실하게 비춰주었다. 무대 위 역시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극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무대 위는 뒤쪽의 캐비넷에서 튀어나온 옛날 기억(장난감과 같은 소품)들로 어질러졌고, 주인공 및 다른 등장인물들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기며 대화를 하는 장면이 많아졌다. 즉 내면과 일과 욕망/사랑(친밀관계)의 구분이 점점 흐려지는 주인공의 심리를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 루시드 드림의 의미
자각몽.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현실이 꿈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현실 밖에는 사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상상하는 것과 실제의 차이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범죄자, 정신이상자(사이코패스)는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열 여덟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살인마가 '지극히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갖고 있다는 판결을 받는다면, 이 세상의 질서 및 도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소위 '정상인'들이 정상이기 위해서는 이동원이 매우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며,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것과 같은 지점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실천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작품 내적으로 보자면 범죄자 이동원이 꾸고 있는 꿈('난 내 운명에 살인이 허락되는지 알고 싶었어요')과 최현석이 꾸는 꿈(즉 성공하고자하는 욕망). 우리의 현실 자체가 꿈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루시드 드림'의, 살인자로부터 변호사로의 전이. 그리고 <루시드 드림>이라는 연극 자체가 꿈과 욕망으로 흘러가는 우리들의 삶에 잠깐의 브레이크를 거는 경험. 또한 얼마나 하나의 문학작품(꿈)이 살인욕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