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의 "The Purloined Letter"(Edgar Allan Poe) 분석에 따르면 왕비의 비밀편지를 훔쳐가버린 장관은 그녀에 대해 권력관계를 가지게 된다. 왕비는 장관이 비밀편지를 언제든지 폭로할 수 있다는 걸 알고있고, 장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편지는 부쳐지지 않았을 때만 권력가치를 지닌다. 편지가 이미 사용되어 버린 경우 장관은 왕비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결국 장관은 전적으로 편지의 존재에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엔 편지 자체가 그를 통제하는 힘이 되어버린다.
한 여성친구는 자기가 마치 '기회주의자'가 된 것같다고 말했다. 페미니즘과 동시에 남자들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현실세계 속에서, 이럴 땐 이 논리를 택하고, 저럴 땐 저 논리를 택하며 여자라는 지위를 이용하는 면이 분명 있다고.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것도 알아야 한다. 상대도 이미 내가 기회를 타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음을. 왜냐하면 시스템 자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여성에겐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성 역시 거꾸로 여성의 권익과 실상의 양면을 충분히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많은 '남성기업', '남성정치'가 여성친화적 메시지를 자꾸 내세우면서도 결국 그 안에선 여성이 올라설 자리가 없게 만드는 것은 이런 맥락의 결과아닌가. 무슨 개소린가 싶지만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가 내가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얽히고 설킨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 역시 페미니즘 그 귀찮은 것 쉽게 발로 뻥! 차버리면 쉽고 편하고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이미 작성된 페미니즘이란 편지는 이젠 양쪽에서 모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권력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201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