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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독서모임



어젠 오랜만에 독서모임에 다녀왔다. 친한 친구 하나를 이끌고. 하루의 영업을 마감한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에서 각자 가져온 책을 읽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모임이다.  


독서라는 행위가 언제부터 이렇게 개인적인 취미, 여가활동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호랑이 커피마시던 시절만해도 서당에서 똑같은 책 닳고 닳을 때까지 돌려보는게 일이었을텐데. 지금은 책은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거나 산다는 것은 자기표현이기도 하고, 소유를 통한 만족감을 주기도 하는 매우 복잡한 상징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점점 확대되고 있는 eBook의 사용추이만을 봐도, 이제는 아예 한 번 읽고 '버리는' 독서의 형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나는 바로 그 중간단계의 사람으로서, 존재감과 존중감을 형성하기 위해 책을 읽고, 때로는 지식욕을 물체화하기 위해 책을 구매하는 편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현대인 대부분이 개인적인 독서를 즐기지 옛날만큼 독서모임을 활발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독서모임이 신기하고 부담없이 갈만하다. 한 가지 책과 한 가지 주제만을 갖고 달려가야 하는 독서모임과는 달리, 모임참여자들이 자기 멋대로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얘기나 꺼낼 수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인 공간에서의 개인적인 독서라고나 할까. 고즈넉한 헌책방에서 재밌는 책에 몰입되는 경험은 아주 그만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각자가 골라서 읽고 있는 책들은 모두 현재의 자신 일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같은 경우 친한 지인이 예전에 추천해줬던 <어댑트>라는 책을 읽고 있다. 아마 비슷한 연배이다보니 사회적으로 처한 시기나 환경이 유사하기에 추천해준 책이 잘 먹힌 것이리라. 이 책은 불확실한 경제, 사회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진화론으로부터 찾고 있다. 사회, 경제, 경영서를 탐독하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매우 잘 맞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쭉 사람들의 얘기를 다 듣고 있자니, 필요에 의해서든 아니든 최근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과 관련되지 않은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상당히 중요한 발견이었다. 함께 간 내 친구는 다른 독서토론을 위해 수잔 손태그의 <사진에 관하여>를 읽고 있었고, 먹을 것에 관심이 많은 헌책방지기는 <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를 읽고 있었다. 이외에도 보들레르 시에 대한 분석을 읽는 사람, 추리소설에 대한 장르적 분석을 읽는 사람, SF소설을 읽는 사람 등이 있었는데 각자가 책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거꾸로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성향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사실 책 구매의 과정을 아주아주 단순화하여 보자면 재밌어 보이는 기사의 제목을 클릭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관심있는 키워드나 사건이 담긴 기사의 제목에 제일 먼저 눈이 가게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은 기사보다는 양이 많고(많은 시간을 요함) 가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클릭 전에' 신중해진다는 것 뿐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아무리 eBook 시장이 고전 중이어도 나중에 종이책 시장을 더 많이 잠식해나갈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 이미 우리의 하루 중 시간의 많은 부분이 독서 대신 블로그 포스팅이나 뉴스 기사를 읽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한 가지 재밌었던 것은 다른 사람이 기증하려고 가져왔거나 읽으려고 가져온 책에 무한정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는 점이다. 특히 친한 친구가 기증하려고 가져온 책은 그냥 그 자리에서 당장 사고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다(내가 이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하하). 아무리 생뚱맞은 책이라도 나와 연관고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면 경계의 장벽이 사라지고 호감이 생기는가보다. 또는 그냥 집단 구성원 간의 유사성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어떤 책이라도 테이블 위에 올라가면 얘기가 되는 것을 보면, 서로가 비슷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피로가 밉지는 않았을만큼 즐거웠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