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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중반


스무살에 관한 이야기도 많고 서른즈음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데 그 중간 - 이십대중반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이야깃거리가 없는 시기이기 때문일까. 스무살은 어떤 얘기도 '스무살'이라는 레이블만 붙으면 다 스무살에 관한 얘기가 되는 아주 탐욕스러운 시기다. 즉 공산주의자 행세를 하건 극우 코스프레를 하건 프리섹스를 자처하지만 실제 성사율은 0에 수렴하건 고소공포증을 앓으면서 고딕펑크를 지향하건 말건 니가 누구건 얼마나 외롭건 in conclusion 스무살 이쁜 청춘, 하면 다소간 욕을 먹더라도 제법 괜찮은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청춘은 제멋대로인 척하지만 전혀 위험하지않고 우리아기 뽀얀 엉덩이처럼 몹시 탱탱 건강하다. 어쨌거나 얘기할 거리가 굉장히 많다.

서른즈음은 스무살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거대서사다. 일단 전인류의 모든 늙다리 빼는 소리들 - ex 꿈도 희망도 없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 기본적으로 서른즈음부터 시작하는 소리다. 따라서 늙다리의 저작권은 거의 대부분 서른즈음에 있다. 더구나 사람들은 서른즈음이 되면 모두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수요층은 매우 두텁다. 뿐만 아니라 공급층마저 두텁다. 서른즈음에 사람들은 젊은 육체들에 대한 질투를 세련되게 포장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서른즈음은 아주 두터운 얘기다.

그런데 이십대 중반은 어떤가. 얇디 얇다. 그는 모든 게 어중간하다. 세련되지 못하지만 세련된 척 한다. 어설프지 못하지만 어설프다. 이야깃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죄다 재미없는 얘기뿐이다. 걔 결국 신림동 갔대, 너 미쳤어 아직도 걔랑, 걔 웃기지 않아?..라며 온갖 걔들에 관한 잡설을 나눈다. 하지만 잡설은 어중간한 어딘가에서 자음으로 모음으로 뿔뿔이 흩어질 뿐이다. 그렇게 통용되지 못하는 그림화폐가 되어 각자의 지갑 속에 머물 뿐이다. 이십대 중반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얘기: "언제쯤 안 이럴까?" 입안에 머물러 있는 씁쓸한 그 감각이다. 아직 앞자리는 2로 시작해 콜라라고 할 수 있지만 탄산과 냉기는 다 빠져버려 쌍화탕으로의 전락을 기다린다. 

(후략)

대학생문화매거진 <FRONT> 창간호 에디터 주영민님의 글

나도 어느덧 이십대중반이구나. 오늘 문득 들었던 생각인데, 전엔 그렇게 눈길도 주지 않았던(심지어 경멸하기도 했던) 경영서적, 자기계발서들 역시 필요로 하는 사람의 무리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존재할 것임을 알았다. 나한테도 이런 책들이 필요한 날이 올 줄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