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저자
노라 에프런 지음
출판사
반비 | 2012-06-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노라 에프런이 전하는 신랄하지만 따뜻하고 유쾌한 메시지!로맨틱 ...
가격비교




나의 올해의 책 리스트에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 있던 걸 눈여겨 본 언니가 빌려준 책. 


노라 에프런은 무슨 생소한 미국사람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중학교 시절의 나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엄청난 사람이다. <유브 갓 메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나리오 작가... 할리우드 로맨틱 코메디의 최첨단을 보여줬던 여자다. 여성이었구나. 최고다.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서른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다른 언니들에게 추천했다. 그러자 책에 나오는 "철들면 버려야 할 제1판타지"가 뭐냐고 묻는다. 여러 짧은 에세이들을 묶어놓은 책인지라 제1판타지, 제2판타지 이런 식으로 '가르치듯' 나열되어 있지 않다. 책 제목은 에세이 제목도 아닌 내용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일 뿐이다. 어쨌거나 노라 에프런이 주장하는 "철들면서 버려야 하는 보편적인 판타지"는 바로 식당 경영이다. 그에 대한 근거를 찾고자 하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노라의 에세이는 매우 신변잡기적이고, 감성적이고, 직관적이고, 섬세하고, 까탈스럽고, 여성스럽다. 그녀는 스스로가 그렇게 믿기 때문에 믿지, 딱히 이유를 달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친구들에게 해주었더니 다 같이 동시에 "아~"라는 격렬한 공감반응을 보였다. 아마 식당 경영에 카페 경영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며. 


이런 느낌이다. 미국에 사는 육십 대 노라언니는 매우 친근하면서도 때론 음식의 맛에 있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하며, 독자로 하여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즐겁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유쾌함과 솔직함. 직관과 현명함. 자신이 쓴 이야기들과 닮은 여자구나. 미국사람들이 딱 좋아할만한 스타일이야. 한국사람인 나도 좋다.


최근에 좋은 에세이들을 만나며 느낀 건, 그들은 참 평범한 신변잡기적인 것들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젓가락으로 콕 집어내어 흰 그릇 위에 먹음직스럽게 잘 차려낸다는 것이었다. 노라를 성공시킨 요소들도 그랬다. <유브 갓 메일> 같은 영화는 새로운 문명 커뮤니케이션의 탄생 및 변화라는 시기를 딱 집어놓고 '이 시공간에 로맨스가 벌어진다면?'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다. 영화 정말 재밌게 봤는데. 노라언니는 이 책에서도 누구나 느끼면서도 콕 집어 얘기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언어로 조각해 놓았다. 


'펜티멘토', '이메일', '이혼'에 대한 글을 제일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