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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장정일

 

세 번째 구입한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서 사용한 두 대의 운명은 이러하니, 첫 번째 노트북은 한밤에 마감에 쫓겨 글을 쓰다가 커서가 움직이지 않길래 잔뜩 열화가 뻗친 상태에서 주먹으로 책상 위의 그놈을 쾅쾅 쳐서 두들겨 부셨다. 다음 날 아침까지 갖다 주어야 하는 마감 원고는 '핸드 프린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한 140만 원 돈을 주고 새 노트북을 샀는데 한 일주일 정도 지나서 첫 번째 노트북을 두들겨 부술 때와 똑같은 사용 미숙으로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먹으로 쾅쾅 치려다가 머리에 얼핏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는 주먹으로 깨부쉈으니 이번에는 발로 한 번 밟아 봐야지." 열화가 뻗친 상황에서 전원 코드와 프린트기 코드를 뽑고 나서 두 손으로 정중히 들어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동작을 하면서 다시 떠오른 생각. "히야, 내가 이렇게 이성적이고 차분할 수 있다니!" 그리고 풀쩍 뛰어서 콱 밟았다. 요 몇 년간 심심찮게 회자되는 말로 "IMF가 사람 여럿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옛날 같았으면"하고 눈을 흘기는 일은 있지만 이제는 노트북을 두들겨 부술 엄두를 못 낸다. 대신 오매불망하는 내 소망을 노트북은 이루어 준다. 옳게 인용했는지는 심히 저어되나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은/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는 내 마음속의/ 한숨과 같은 것이었으니" 했던 누구의 시구처럼, 노트북이 무서워서 뚜껑을 꼭 쳐 닫고 될수록 글 쓸 기회를 갖지 않는다.

 

ㅡ책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