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의 분위기가 좋다.
문학으로 치자면 기승전결(or 기승전병)의 起.
복선이 꾸역꾸역 엉켜있어 사건이 터지기 직전의 혼돈상태.
장마를 알리는 강한 바람과 무엇인가 일어나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은 짙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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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생이어서 그런가, 남쪽 섬 출신이라 그런가, 문학을 전공해서 그런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저 나는 장맛비가 좋다.
대학시절 길을 걷다 머리 위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덩어리지면서 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마치 '쟤 머리 위로 떨어져보자' 공모하는 속삭임처럼
퐁~ 퐁~
그리고 몇 방울 내 머리 위로 떨어지더니 여름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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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강 산책기.
하늘을 뒤덮은 구름 덕분에 쨍한 햇볕없이 상쾌한 시작.
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금색 노을빛에 바람결이 입혀진 한강.
약간의 습기로 인한 싱싱한 색깔들. 연두색 녹색 노랑색 분홍색 빨강색.
높게 자란 푸른 갈댓잎이 바람을 맞을 때마다 솨아아 솨아아
툭, 툭, 무겁고 성기게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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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진 굉장히 좋았는데 그 다음은
콰지지지지직 꽝! 번쩍!
너무 촘촘히 내려서 피할 수 없는 빗방울!
속옷 양말까지 푹 젖은 채로 귀가.
시원시원한 여름비.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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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도시에 오래 살다보니,
눈과 비처럼 육체적으로 intimate하게 다가오는 자연을 만나면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