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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sh

CRASH

BALLARD

PICADOR 200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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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그리고 보드리야르가 리뷰까지 한 책이기에 찾아읽었다.

한 절반까지 읽다 손을 놓아버린 경우가 되어버렸다.

변태성욕에 대한 책이란걸 알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는 끄덕일 수 있어도 나에겐 전혀 에로틱하기는 커녕 지루하게밖에 여겨지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

 

주인공과 그의 친구 Vaughan은 차(기계문명), 특히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고에 대한 에로티시즘을 갖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미친듯이 질주하다 서로 박아대는 차들, 교차로/인터섹션에서 다양한 각도로 부딪치는 차 사고를 보기위해 찾아다니는 이들. 각 사고에 대한 연구와 자료수집을 통해 자신의 성적최고도에 이르게 하기 위한 모의연습(simulation)을 하다 결국 원하던 대로 오르가즘을 느끼고 죽는 Vaughan의 사고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는 상처에 대한 에로티시즘이란 도착증(obsessions with the mysterious "eroticism of wounds")을 갖고 있었다. 주인공 James Ballard(작가의 이름과 한 자도 다르지 않아 조금 놀랐다) 역시 첫번째 교통사고를 겪고 난 후부터 그에 따른 '좀 더 다른 차원의 성적경험'에 대해 서서히 깨닫게 된다. "The crash was the only real experience I had been through for years(교통사고만이 근 몇 해동안의 가장 실제적인 경험이었다)"는 화자의 말은 왜 보드리야르가 이 책에 대해 에세이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가늠케한다. 온통 현실같은 비현실(simulacra/simulations)로 가득찬 현대인의 생활에서 단 한 번의 실제일 수밖에 없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혹은 이를 목격하게 되는 교통사고란 강렬한 경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단히 혹은 냉혹하게 인간이란 생명체에게 상처의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는 기계문명일체를 새로운 형태의 에로티시즘으로 보는 시각이 신선하다. 'new sexuality born from a perverse technology(변태적인 테크놀로지에서 태어난 새로운 섹슈얼리티),' 'metalized excitements of technology(테크놀로지의 금속적인 흥분감),' 'the languages of invisible eroticism(보이지않는 에로티시즘의 언어)' 등과 같은 표현이 잘 말해주고 있다.

 

문제는 작가가 참신한 에로티시즘을 그 하나만으로써 전체 소설을 우려먹는 것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거다. 비록 책의 절반밖에 읽지 않았기에 뒷부분엔 새로운 시도가 나온다,는 식의 비판/해명이 들어온다면 깨갱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절반이 흐르기까지 어떻게 같은 내용, 같은 생각만이 반복해서 나올 수가 있느냐는 개인적인 싫증도 무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살짝 뒤까지 훑어본결과) 이야기 전개는 맨 앞의 'Vaughan이 결국 죽었다'로 시작해서, 주인공 Ballard가 Vaughan을 만나게 된 경위로 시작해 순차적 시간전개로 진행되다가 다시 Vaughan의 교통사고 시점까지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소설 초반에서 중반까지 내내 'Crash의 클리셰(cliche)'인 '기계문명/차가 야기하는 상처와 경험의 에로티시즘'이 단지 유사단어로만 바뀌었지 계속 반복되고 있을 뿐, 내용적으로 혹은 구조적으로 그 외의 다른 시도는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주로 남성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남성작가/화자로서의 한계도 보인다. 등장하는 여성마다 성적대상으로 묘사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생각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더욱 에로티시즘의 공감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보드리야르의 에세이를 읽어보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든다.

비슷한 종류의 성적도착이 있는 사람이라면 즐거움을 느낄만도 한 책이다.


200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