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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 | 2009-01-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하루키를 세계적 작가로 키운 건 마라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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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틀에 책 한 권씩 읽는다. 동시에 두 권씩 읽는다. 정말 다른 생각없이 책 생각만 하며 사는 것 같다.


읽은지 딱 한 달된 책. 하루키 신간이 나온다하여 서점가에서 모두 술렁술렁했지만, 난 검증(?)되지 않은 신간보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그의 다른 책을 골랐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 얼마나 달리기가 좋았으면, 하루키같은 작가가 이런 제목의 책을 냈을까? 


진실로 이 책은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한 집착과 기록, 때론 싫증, 다시 반복과 무지막지함, 분석과 열정... 적합한 단어인지는 조금 고민이 되지만 한마디로 '오타쿠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집어들고나서 알고보니 하루키는 마라톤을 (책을 쓴 당시에 이미) 풀코스로 25번을 완주했고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을 세 번이나 출전한 바 있다. 작가계의 아이언맨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듯.


하루키는 서른세 살,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으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므로 달리기를 말할 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고로 이 책은 하루키가 인정한 가장 자전적이고 스스로를 많이 드러낸 에세이로 꼽힌다. 


약간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그의 달리기 기록(하루키는 오직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하루에 세 시간씩 달린다)을 읽다가도, 갑자기 뭉클해진다. 전심전력으로, 달리는 동안에는 절대로 걷지 않는, 철저한 독불장군같은 고집과 인내력. 작가이고 싶어서, 작가를 하려면 체력이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오래 살며 많은 글들을 써야하니까), 작품을 쓰는 동안 무작정 자신을 연소시켜 버리면 안되기 때문에 시작한 달리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는 완고한 자기관리는 스스로에게도 무자비하다. 성공하지 않는게 우스울 정도다. 


하루키란 인간에게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건, 그의 울트라 마라톤에 대한 기록에서였다. 매년 홋카이도 사로마 호수에서 열리는 울트라 마라톤(100킬로 코스)을 뛴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헉헉대는듯 숨쉬기가 벅차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타일렀다. 거의 그것만 생각하면서 참았다. 만약 내가 피도 살도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허물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확실히 여기 있다. 그에 따라 자기라고 하는 의식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순간에 있어서는 그 모든 것들은 이른바 '편의적인 형식'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것은 기묘한 사고방식이며 기묘한 감각이었다. 의식이 있는 것이 의식을 부정하려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무튼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기(無機)적인 장소로 몰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 이외에 달리 연명할 길이 없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170

 

기계인간에 빙의하면서까지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었던 하루키. 생각만해도 숨이 턱에 차오르는 마라톤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매일같이 달리는 연습을 하고, 마라톤 도중 한 번도 걷지는 않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러너. 아니, 소설가.  


우리는 초가을 일요일의 소박한 레이스를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음 레이스에 대비해 각자의 장소에서 (아마) 이제까지와 같이 묵묵히 연습을 계속해간다. 그런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 별다른 의미도 없는 더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또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 비쳐진다고 해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256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258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자신의 묘비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이 써넣고 싶다는 하루키. 보수적이고 고집스러운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부끄럽지만, 다시 한 번 주말 아침 달리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