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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




그랜드투어

저자
설혜심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3-03-0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애덤 스미스, 에드워드 기번, 괴테 등 최고의 지성을 탄생시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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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여행이란 건 매우 근현대적인 상품이다.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처럼, '누구나' '그 자리에 있다면' 볼 수 있는 공공재적인 특성을 지닌 것에 언제부터인가 모두가 돈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여행이란 '경험'을 중시하고 기꺼이 돈을 내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였을까. 조선시대에도 외교사절단이나 국제무역을 위해 여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역시 정부에 의한 파견 형식으로 학습의 의무를 지고 떠나거나 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오늘날과 유사한 관광의 뿌리는 근대의 스타트를 끊은 유럽, 특히 영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 역사를 탐구하고자 한 책이 바로 <그랜드투어>

 

설혜심 교수님의 <그랜드투어>  여행을 '교육열'이라는 측면에서 밝혀낸 대중역사서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책의 소제목인 '그랜드투어-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에서 그려지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유학 열풍이다. 물론 저자가 서문에서 '좀 더 실질적 차원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해외 유학의 득과 실을 따져봄으로써 과연 해외 유학이 떠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판단해보고 싶었다'고 밝힌 것만큼의 저자의 의견이 결론으로 확연히 나타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일부 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에서 그랜드투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따라가다보면 시공간의 흐름을 잊고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의 공통적인 욕망들을 발견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그랜드투어의 개념으로 시작한다. 18세기 영국의 학자였던 애덤 스미스의 말을 인용한다.

 

영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보내지 않고 곧 그들을 외국에 여행시키는 것이 점점 하나의 습관으로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여행을 통해 일반적으로 대단히 발전되어 귀국한다고 한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18세기 영국에서는 상류 계층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해외여행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은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엘리트 사이로 퍼져가게 되었다.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로 생각된 이 여행은 '그랜드 투어'라고 불렸다. - 19p

 

서양에서의 여행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시작한다. 주로 특별한 사명이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군인, 성직자, 상인과 같은 특별한 직업군에게만 여행 허가가 주어졌으며, 로마 사람들은 최초로 '휴가 여행'이란 것을 발명하기도 했다. 이어 종교가 갑이었던 중세에는 경건한 종교 행위로서의 '순례'만 장려, 허가되었다. 중세 말이 되어서야야 '모험'의 성격을 가진 자유 여행이 기사들에 의해 실천되었다. 스스로 무장할 수 있는 권리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는 오랫동안 노예와 자유인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특징이었는데, 이 두 요소가 기사들의 방랑에서 두드러지게 구현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리상의 발견'과 발맞추어 모험의 총화라 할 수 있는 특별한 직업군인 '탐험가'가 등장한 것과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는 '탐험의 시대'가 되었다

 

18세기 영국에서 그랜드 투어가 시작된 것은 사실 섬나라로써로마 제국의 변방이자 야만국이었다는 역사를 가진 영국인들의 은근한 열등감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중심 로마, 그리고 패션와 예술의 중심 파리에 대한 영국 왕족의 동경은 그곳을 직접 여행하거나, 여행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유학을 통해 얼마나 배웠는지는 측정할 수 없지만, 다녀왔다는 것은 분명한 경력으로 남기 때문에 왕족들에게 잘 보이고 '말 통하는 척' 하기 위해서는 사회 엘리트에게 필수 코스가 되어갔던 것이다

 

당시의 그랜드 투어를 역사적 재료를 통해 그려낸 부분 중, 재밌었던 부분은 살아있는 <카메라, 화가와 그림>이란 챕터였다. 여행을 가면 카메라를 꼭 챙겨야하는 것이 당연하고, 온 관광지에 '포토스팟'까지 지정되어 있는 오늘날의 관광행태와 어쩜 이리도 비슷한지.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이 크게 유행했다. 그리스-로마 유적,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 남긴 수많은 그림 앞에서 영국인들은 문화적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찬란한 예술적 전통이 숨 쉬는 곳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야말로 그 문화의 일원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초상화는 고국에 돌아갔을 때 현관이나 서재에 걸려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음을 증명하는 멋들어진 이력서 역할을 할 터였다. (...) 아직 사진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여행자들은 자신이 본 풍광을 화폭이 담기를 원했다. 그것은 기록이자 추억으로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동질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럽게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 대화의 물꼬가 될 것이었다. (...) 영국 여행자들을 위한 그림, 여행자들이 집에 가져가고 싶어 하는 베네치아 풍경을 그리면서 카날레토의 화풍은 확 바뀌었다. 밝은 햇살에 가지런히 정비된 운하, 울긋불긋 선명한 건물, 베네치아가 자랑하던 곤돌라 경주나 '바다와의 결혼식' 같은 스펙터클한 이벤트가 그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198p

 

영국의 상류층에서 불었던 그랜드 투어 열풍은 엘리트 여행에서 대중 관광으로 변모하게 된다. 19세기 중엽 그랜드 투어의 시대는 종말을 맞고, 그 후로는 관광(tourism)의 시대가 도래한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얻어진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 대중 소비사회의 등장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관광이 일반 서민층의 욕구와 주머니 사정에도 부합할만큼 대중화된 것이다.

 

18세기 그랜드 투어의 시작은 '문화적 열등감'이었고, 그랜드 투어는 영국의 폐쇄적이었던 섬문화에서 타국가의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코스모폴리탄'적 영국인을 만들기도 했다. 반대로 부모의 의지에 의해 상류계층에 '편입'시키기 위해 보내진 어린 학생들이 온갖 유흥과 방탕한 생활만을 즐기게 되었던 결과를 만들어낸 것도 그랜드 투어다. 왜 보내는지, 왜 가는지 명확한 이유를 유학을 가는 당사자가 명확히 알고 있지 않으면 돈낭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영국 귀족들의 교육열로 비춰본 재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