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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어린 시절




불평등한 어린시절-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

저자
아네트 라루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 | 2012-11-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교육도 결국은 대물림되는가? 그 질문에 실증적으로 답하다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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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간략소개


2004년 미국 사회학계의 상을 휩쓸고, 우리 나라에는 작년 말에서야 번역출간된 책. 부모의 학력 및 경제적 수준별 사회계층을 나누어 중산층, 노동자 계층, 빈곤층 출신의 어린이 88명을 대상으로 '자연주의적' 참여관찰 기법(조사자 측의 개입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을 통해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 학술서다. 


책만 두툼한 것이 아니라 주제 자체도 얄팍하지 않아 오랫동안 책상 위에 놓고만 있었는데, 일단 첫 장을 읽기 시작하니 끝까지 쭉쭉 읽힌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인데, 학술논문보고서 수준의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례 위주의 에피소드와 흡입력있는 대중적인 언어로 쓰여있다. 책의 첫 장은 마치 소설의 도입부같다. 

늦은 봄 오후, 개릿 탈링거는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 뒷마당 수영장에서 웃고 떠들며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있다. 백인인 개릿은 초등학교 4학년이고 집에는 침실이 네 개 있다. 여느 때처럼 아빠는 저녁 식사를 빨리 끝낸 다음 개릿을 차에 태우고 축구 연습장으로 간다. 축구는 개릿이 참여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 중 하나다. 개릿의 형은 다른 곳에서 야구를 한다. 개릿의 부모는 저녁때 휴식을 취하며 와인을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 밤은 그런 날이 아니다. 부부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이 미리 예정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서둘러 준비를 갖춰주느라 정신이 없다. -15p


미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계층을 중산층, 노동자 계층, 빈곤층 가정으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가 얼마나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있긴 하다(부유층의 자녀 양육방식에 대한 부분을 포함하지 않은 점, 교육에 대한 관점의 문화적 차이 등). 하지만 어쨌든 누구나 궁금해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고자 한 학술적 연구가 많지는 않다는 점(대개 일반인들은 드라마 같은 가상의 스토리를 통해 엿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걸로 끝날 뿐이다) 그리고 저자가 해당 주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참고하고 있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을 실증적인 참여관찰과 기록을 토대로 증명해내고자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 아비투스 이론 : 어려서부터 가족에게 배운 행위, 규칙, 취향이 내재화되고 이렇게 체화된 성향은 지속적으로 전이되어 훗날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회적 경험의 판단 근거가 된다는 것




2. 중산층 가정 자녀의 '집중 양육방식' VS 노동자 빈곤층 자녀의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불평등한 어린 시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항목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첫째, 아이의 일상생활 속 활동에 대한 부모의 양육방식이다. 중산층 아이들의 일상은 자녀의 성장과 발전에 관심많고 열성적인 부모의 교육관으로 인하여 빡빡한 학교 및 학교 외 활동으로 차있다. 이를 "집중 양육방식"이라 칭한다. 반면 빈곤층 및 노동자 계층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 자신들의 교육관 혹은 경제적인 사유로 인해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활동보다는 아이가 친구들과 밖에서 놀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길러진다. 두 가지 양육방식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공부를 하라고 학원으로만 밀어넣는 한국과는 관련없이 온전히 미국의 경우에만 해당되지 않을까 싶지만, 미국 부모들이 중시하는 다양한 학교 외 경험(주로 스포츠, 동아리 활동)은 새로운 어른 혹은 동료를 만나 협력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여기서 얻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의 기술, 여러 가지 주어진 기회 중 중요도 순으로 우선순위를 가르는 능력 등은 훗날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아이들은 비교적 부모를 포함한 사회적 '어른'들의 관심을 덜 받는 편이다. 아이들은 야외에서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즐기고, 규칙과 진행방식 역시 나름대로 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데는 익숙치 않지만 스스로 놀이를 주도해가거나 창조해나가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학교 외 활동을 통한 사회적 경험을 중시하는 미국의 교육환경을 고려해야하는 분석결과이긴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부모의 교육열'로 보인다. 교육열은 대체로 사회 내 기득권층에 편입되는데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데 집중되기 마련이다.


둘째, 가정에서의 언어사용 및 대화방식이 형성해가는 불평등이 있다. 변호사 부모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의 논리적 대화방식과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의 명령조 대화법엔 차이가 있다. 관찰 결과, 변호사 부모 가정에서 자란 윌리엄스는 가정 내에서 단어의 여러 가지 의미를 토론하기도 하고, 풍부한 어휘력 사용으로 부모와 협상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에 타당한 논거를 제시하는 법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흑인 빈곤층 가정에서 자란 해럴드의 부모는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거나, 언어적 교육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언어적 소통은 결국 아이의 학습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역 및 관계에서 자신감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두 아이 모두 관찰기간 동안 병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윌리엄스 부인은 아들에게 의사와의 만남에 앞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미리 생각해놓으라는 등 아이가 미리 언어를 준비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와 달리 가정에서 어른의 지시에 따르거나 질문에 답하는 데만 익숙한 헤럴드는 의사의 질문에는 곧잘 대답했지만 궁금한 점에 대해 직접 질문하는 일은 없었다. 더욱이 전문 용어를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게 이해하는 모습은 관찰된 여러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전문가로부터 제공된 정보를 활용하여 누릴 수 있는 이득의 차이를 한정지었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학교 교육에 대한 부모의 개입방식의 차이가 있었다. 중산층 가정 엄마인 마셜 부인은 적극적으로 아이가 겪는 문제상황(발레수업에서 적응하지 못하여 더 나은 선생님을 찾아주고자 함)에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마셜 부인은 교육자들이 사용하는 용어(예를 들면 티어 선생님이 얘기한 “사회성과 감정의 증폭”같은 용어)에도 익숙했고, 자신에게는 딸을 학교 영재 프로그램에 등록시키기 위해 외부 기관에서 따로 지능 검사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부모일수록 교육 기관을 상대할 자신을 잃고 반항심, 두려움 때로는 무력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아이가 학교에서 난독증을 의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명에 대한 이해부족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단지 돈을 쓰게 하는 트집이라고만 생각하여 아이를 방치해두는 경우도 있었다. 


중산층 아이들이 겪는 '집중 양육방식'과 노동자 및 빈곤층 아이들의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의 특징을 정리한 표는 아래와 같다.


 

 집중 양육방식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주요 특징 

   자녀의 재능과 의견 및 능력을 평가하고 

   지원하려는 부모의 능동적인 노력 

   자녀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임 

하루 일과 구성 

   아이들이 어른의 관리를 받으며 다양한

   활동에 참여 

   아이들이 주도하는 '놀이', 주로 가족들

   간에 이루어짐 

사용하는 언어 

   설득/지시

   어른들의 발언에 대한 아이들의 능동적 대응

   어른과 아이들 간의 장기적인 의견 조율 

   지시

   어른의 발언에 대한 질문이나 대응을 거의 

   하지 않음, 지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임 

학교 교육 참여 

   아이의 상황을 대변한 비평과 개입

   이러한 역할을 아동에게 위임하기도 함 

   의존적 태도

   불만과 무기력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아동 양육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 

결론 

   아동의 권리 의식 향상

   제약에 대한 의식 발달 





3. 결론 : 중산층 가정의 양육 전략의 승리(?)와 명암


내가 가졌던 몇 가지 의문점과 관련하여, '부유층'을 관찰대상 사회계층에 포함시키지 않았는지는 아마도 '중산층'이 '부유층'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즉 크게보면 유산계급(부유층, 중산층) 대비 무산계급(노동자, 빈곤층) 가정의 자녀교육태도 및 결과에 대한 연구인 셈이다. 해당 연구가 가질 문화권에 따른 차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건 살짝 미국적 사고방식이 엿보이긴 한다. 하지만 '미국 중산층 가정의 양육 전략'에 대한 부분을 읽다보면 그대로 '강남 엄마들'이 데자뷰처럼 떠오른다. '강남'이라는 지역적 상징이 '부'와 '교육'으로 대변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결국 해당 연구결과는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갖는다-는 개인적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 계층이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밝히고 싶었음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많은 미국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사회 계층이라는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열려’있다고 믿는다. 사회를 개인들의 집합으로 여기며, 어떤 개인이건 열심히 일하고 충분히 노력한다면 그리고 재능이 있다면 사회에서 더 높은 위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다. 간단히 말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다. (…) 부모의 사회적 위치가 자녀들의 삶의 경험과 결과물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미국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인의 삶과 관련한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

나는 서로 다른 사회 계층에 속한 가족들의 삶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선택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미국의 가정들을 한층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이번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개인의 태생적 배경인 부모의 사회 계층적 위치가 그 개인의 일상을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믿음 역시 갖고 있었다. 비록 부모나 자녀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요인의 영향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 부모와 자녀들은 사회 기관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들이 적용해온, 혹은 자신들에게 적용되어온 문화적 논리가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회 기관은 중산층 가정의 양육 전략에 좀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비록 가족 구성원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정에서 적용하는 문화적 논리는 사회 기관에서 이른바 표준이라고 일컫는 행동 양식과 많은 부분에서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작아서 그런 건지, 계급과 권력 차이를 옹호했던 유교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그런건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경제적 사회적 계층간 차이에서 오는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다. 그에 반해,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미국엔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 사람들이 많나보다. 여기서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 속 인재들의 유형(類型)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물론 노동자, 빈곤계층 가정의 아이들이 기존체제에 친화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재주로든 성공하면 된다는 신화가 그들의 머릿 속에 존재하기에 꿀리지 않고 겁나 당당하다. 그래서 부모계층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운명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아직도 한국에서는 학력수준의 높고 낮음이 그 사람의 재능에 앞서 중시되며, 따라서 부모계층이 자녀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국보다 아마도 더 클 것같다.


마지막으로 책에서는 중산층 자녀들이 각자에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양육방식에 있어서 '승리'했다고 표현하였지만, 더불어 어두운 뒷면도 지적하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집중하기 때문에 개인적이며(이기심으로 쉽게 변질될 수도 있는) 경쟁에 익숙하여 협력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인용을 통해 중산층 아이들은 "3루에서 시작해놓고 자기가 잘해서 이긴 줄 안다"는 말로 설명한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어디쯤인지,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