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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암스테르담, 자전거 풍경

 암스테르담, 자전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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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선, 자전거에 치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서 있는 곳이 혹시 자전거 도로는 아닌지, 길을 건널 때 주변을 살피지 않으면 당신은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자전거에박히거나, 혹은 신경질적인 자전거 벨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욕지거리를 듣게 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많은관광객들은 이 때문에 암스테르담을차보다 자전거가 무서운 도시라고 말하지만, 한번 자전거에 올라타게 된다면 분명 암스테르담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고 말 것이다. 물론 당신이 자전거를 사랑한다는 전제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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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장만한 나의 자전거는 고물이다. 뒷골목에서정키(Junkie)’라고 불리는 자전거 도둑에게 20유로( 3 2천원)로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만, 중고가게에서 40유로를 주고 산, 다름아닌 고물. 며칠이나 되었다고 페달이 떨어져나가고, 삐걱삐걱 소리를 얼마나 크게 지르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닐까 부끄럽게 했던 우리 자전거. 체인은 왜 또 망가졌는지 갈아줘야 했고, 갈라진 안장엔 항상 비가 스며들어 나의 엉덩이를 축축하게 했던 너.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집을 찾아오던 2월의 새벽, 일회용 렌즈는 눈이 아파 빼버린 상태였고, 비바람과 눈은 내리 몰아쳤다. 바닥은 미끌미끌했고, 종이지도는 다 찢어져버렸고, 난 길을 잘못 들었고, 앞은 보이지 않았고, 그리고. 어떤 철조망에 정면으로 박아 우린 같이 길바닥에 나동그라졌지. 첫만남은 기억조차 가슴 떨리는 법. 찬 비와 더운 땀에 젖어 두시간 뒤 귀가했던 기억.


 

 

3

 

 

75만 명의 암스테르다머들과 70만 대의 자전거의 풍경은 그야말로 생활이다. 정장을 멋나게 차려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페달을 돌리는 아저씨들, 섹시한 하이힐에 치마를 나풀거리며 자전거로 클럽을 오가는 아가씨들, 앞 뒤의 작은 의자에 꼬마아이들을 앉혀 운반 중이신 어머님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매일 전력 질주하는 지각쟁이 나. 암스테르담은 자전거와 궁합이 잘 맞는다. 언덕 하나 없는 지형에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도시의 규모는 그야말로 자전거타기에 안성맞춤이다.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으로 주목 받으면서 파리나 바르셀로나에서도국가적 자전거 대여가 진행 중이지만 암스테르담과 비교하기 참 멋쩍다. 자전거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주는 운전자들의 태도, 자전거 신호등, 우회전 좌회전의 손신호 등은자전거 문화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잡아왔는지 한 번에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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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물덩어리도 어느덧 생활이 되었다. 사십 분이 걸리던 학교가 십오 분으로 가까워지고, 비오는 날이면 난 어김없이 핫핑크 색 우비를 휘날리며 초록자전거에 올라탄다. 하루 삼십 분은 간에 기별도 안가, 10시 석양 무렵엔 온전히 너를 위한 혹은 목적없는 자전거 시간을 보낸다. 여전히 덜컹덜컹 요란한 놈이긴 하지만, 암스테르담을 한 시간 안팎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허벅지 근육의 탄력을 느끼며 삶의 생동감을 차오르게 하는, 속도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리고 돈키호테적 모험과 추억들을 함께 한 내 '다전거'.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갈 지 벌써 걱정태산인 나.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마리화나가 아닌 자전거에 완전히 중독되고 말았다.

 


2008-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