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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가득한 책, <닥치고 정치>



닥치고 정치

저자
김어준 지음
출판사
푸른숲 | 2011-10-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찍으려면 알고 찍자!인터뷰어 지승호가 묻고 김어준이 답하는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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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정치에 관심없는 나. 4월 선거날 읽은 책.


딴지일보, 나꼼수, 김어준 전부 관심 밖의 키워드였다. 주변 사람들이 뜨거워질 수록 차가워지려는 경향이 있는 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슥 읽어보자 들었던 책이었는데, 읽고나니 그 '에라 모르겠다 그냥 슥'이란 생각을 떠올린 잉여로운 자신이 너무 고마웠던.   


읽고 난 소감. 김어준 천재다. 날카롭다. 자칭 '무학의 통찰력'. 이렇게 직관적으로 대중의 심리를 읽는 인물을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니, 책이란 매체의 존재에 감사했다. 


세 가지 포인트에서 가장 큰 브레인 쇼크를 받았다.


첫째, 보수와 진보의 구분


둘째, 진보의 "죄의식 마케팅"


셋째, 메시지 유통에 관하여


<보수와 진보의 구분>


나는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구분하려 한 적도 없다. 가장 하찮은 수준인 보수 = 한나라당, 진보 = 민주당 정도로만 인식했을 뿐. 김어준은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현재 MB정권은 보수란 말이 부끄러운, 그냥 돈이 최고인 이익집단일 뿐이라고. 그래서 잘못됐다고. 진정한 보수라면, 전통이 되었건, 법이 되었건, 지킬 것은 지켜야 하며 자신의 정치적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념을 바라봐야 할텐데. 우리나라 보수 속엔 그런 '간지'가 없다고. 진보진영에도 별 사람 다 있겠지만, 그래도 이상주의자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역사가 있으니.


<진보의 "죄의식 마케팅">


김어준은 자신이 보수도 진보도 아닌 '본능주의자'라고 말한다. 경계선 상에서 신랄하게 양쪽을 비판하는데, 진보의 "죄의식 마케팅"에 대해 집어낸 부분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가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면 할 수록, 그 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대중'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므로 내편 너편 나누는 '차별화' 전략이 아닌, 우리의 사회라는 '공감'의 전략. 죄의식을 자극하는 엄숙하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아닌, 이래야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축제의 분위기로 설득해야.  


- 190

종교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힘이 결국 죄의식이거든. 누구도 그 율법을 다 지키고 살 순 없다고. 교리는 언제나 아무도 완벽하게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지점에 있어. 어느 누가 그 교리가 정한 죄악을 단 한 번도 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냐고. 불완전한 인간이. 결국 그 죄로 인해 다시 한 번 율법 앞에서 참회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 종교의 속박은 그렇게 완성된다고.


- 192

진보 진영이 대중을 상대하는 자세를 보면 딱 사제야. 자신들의 율법이 절대선인데 왜 너희는 그렇게 살지 않느냐. (...) 그들의 희생은 순교가 되는 거지. 그렇게 모두를 절대적인 진보 가치를 외면한 죄인으로 만들어버리지. 그래서 불편한 거야. 그 죄의식 마케팅이. 그래서 듣기 싫다고.


- 212

그런 소리는 그냥 옳기만 한 소리라고. 옳기만 하면 뭐해. 거기에 맥락과 인간과 타이밍이 없잖아. 그런 메시지엔 아무런 힘도 없다고. 자신의 과민과 과잉을 냉철한 지적 과단성이라 오인하는 거라고 봐. 혼자 잘난 사람 되고 마는 거야. 실제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고.


- 214

(한일월드컵) 내가 사정이 있어 축구장 못 갈 수도 있잖아. 그걸 배신으로 만들어버리면, 그걸 윤리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면, 불편하다고. 마음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거든. 그렇게 죄의식이 자극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외면해버리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 222

언어부터 대중적이어야 해. 그리고 빌어먹을 엘리트 의식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해. 정말 집권하고 싶다면 말이야. 그리고 자신들의 눈물겨운 노고가 상대에게 죄의식을 요구할 권리가 될 순 없다는 걸 깨우치셨으면 해. 종교가 아니라 정치 좀 해줬으면 한다고.


<메시지 유통에 관하여>


나꼼수의 출현 당시 주변에서 나꼼수 해댔지만, 난 오히려 반감을 가졌었다. 히히덕거리기만 한다는 풍문을 들어서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팟캐스트도 잘 듣지도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같은 건 줄 알았다 (확실히 내게 보수적인 기질이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직접 다운받아서 들어보니 이렇게 접근이 편리할 수가 없고, 콘텐츠 역시 차별화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컨텐츠의 조건, "애티튜드", 이건 정말 확실하다. 어떤 애티튜드여야 하는지, 그 태도를 얼마만큼 극단으로 밀어붙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게 능력이다. 김어준은 PD해도 진짜 잘할 사람이다.   


- 301

메시지 유통 구조는 절대적으로 중요해. 그 유통 채널을 타고 프레임이 유포되거든. 머릿속에 한번 세팅된 프레임의 힘은 대단히 강력한 거야. 아무리 정교한 논리도 그 프레임 안에서 노는 한, 절대 기득의 구조를 이길 수가 없다. (...) 방송 3사의 뉴스가 다루는 뉴스, 보다 정확하게는 다루지 않는 뉴스를 생각하면 구조는 완전히 장악당한 게 맞지. 뉴스의 진짜 힘은 뭔가를 다루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다뤄야 마땅한 뉴스를 다루지 않는 데 있는 거거든. 다루지 않으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그런 게 진짜 권력이지.


- 303

탱크로 밀어야만 혁명이 아니야. 기득의 구조가 뒤집힐 수 있으면, 다 혁명이야.


- 304

안 되면 할 수 없고. 항상 이 자세가 중요해. 안 되면 할 수 없고. 그래야 제대로 놀 수 있거든.


-305

태도부터 컨텐츠다. 그래서 난 좋은 컨텐츠의 가장 첫번째 조건을 애티튜드라고 생각해. 무슨 소리냐.

새로이 등장하는 이 하이브리드 플랫폼의 본질적인 힘은 철저한 자발성에 있어.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까봐 안달하게 되고, 그럼 나서서 자기가 직접 광고를 하려고 하거든. 일반적으론 당연한데 이 새로운 공간에선, 광고하면 스팸이고 전파되면 정보다. 어차피 나쁜 컨텐츠는 저절로 죽고 좋은 컨텐츠는 혼자 성장한다. 그 본질을 이해하고 컨텐츠가 스스로 성장할 때까지 버티는 배짱이, 첫번째로 요구되는 애티튜드야. 절대 구걸하면 안 돼.


쉽고 짧고 굵고 치밀하게 쓰여진 글도 참 읽기 편했다. '대중적인 속성'에 대한 감이 확실한 사람. 일단 쉽고 한번에 들어오는게 아무렴 중요하지. 본인의 무학의 철학과 통찰력이 엿보이는 부분이 많아서 계속 밑줄을 쳤다. 그 중에서도 투표날 특집으로 찡- 잊을 수 없었던 명언.


투표는 사실 민주주의를 위한 게 아니야. 그런 건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야. 투표는 내 스트레스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이야. 그게 줄어야 내가 행복해지니까. 


그렇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을 하고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할 수록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상황이 변하건 변하지 않건간에. 내 주변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체제와 구조에 대한 입장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로 엮은 이 책에서 '보수'나 '진보', '정치'란 단어보다 더 많이 등장한 단어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웃음)이다. 인터뷰 중간에 웃음소리를 괄호쳐놓는 표시기호.


책을 읽는 내내 김어준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와서, 오디오 테잎인가 의심됐던, <닥치고 정치>


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