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어패럴과 더불어 좋아하는 캐쥬얼 의류브랜드 유니클로. 아메리칸 어패럴에선 미국스러운 편안함과 섹시함이 묻어나는데 반해, 유니클로는 고품질의 베이직함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느껴왔던 '그것'이 바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의도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정보전달자의 입장에서) 컨셉은 사실 잡으면 그만인 것이지만, 컨셉을 이해하는 것은 전적으로 수용자의 몫이다. 소비자가 명확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면 분명히 실패한 컨셉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제일모직에서 론칭한 SPA브랜드 8 seconds가 조금 아쉽다. 숫자 8을 이용한 마케팅 프로모션 등은 재밌고 독특하긴 했지만, 매장을 둘러보는데 이미 H&M의 데자뷰가 아른아른.)
상당히 재밌는건, 영문학과 문화학에서 그토록 많이 등장했던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을 적용해 마케팅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이자 이론가로, 기존에 문학작품을 작가의 성장배경, 민족, 종교, 성별 등 개인적 특징에 기인해 분석하던 관행을 비판하고, 메시지의 수용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 작가에 쏠려있던 권력을 독자에게 분산, 이양한 것. <유니클로 이야기>를 읽다보니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참으로 소비자-시장 중심적인 사람이란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이 나타났음을, '그들이 인지했는지'까지 철저히 체크하는 메시지 창조자이자 메시지 전달의 달인. 역시 마케팅에서 승리하려면 good listener여야 하고 good speaker여야 하는 것이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스티브 잡스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뛰어난 마케터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와 컨셉의 모양이 너무나 명확하기에, 자신 외에 그 누구에게서도 만족을 찾지 못한다는 점이 유사하다. 한마디로 어떻게 보면 타인을 향한 good listener가 아닌자신을 향한 good listener인 것이다. 대신 이 둘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당위적인 물음을 던지고 자신이 믿는 그것(기술과 디자인 for Apple, 기술과 가격 for Uniqlo)이 '가장 옳은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친듯이 집착한다. 우리의 주변엔 이렇게 집착하는 사람이 없기에 처음엔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지만, 결국 집착성향이 장인정신의 완성인 것.
단순히 유니클로를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통해 부가적인 정보(현재는 유니클로가 Fast Retailing(FR)이라는 지주회사의 브랜드로 떨어져나가 운영되고 있으며, FR이 인수한 브랜드 중에 theory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얻을 수 있었고, '진심은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기존의 의류매장에 가보면 점원이 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서 있다가 매장 안에 들어온 손님이 옷을 사지 않으면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태도로 온갖 설득을 하거나 어떻게든 사게 하려는 자세로 손님을 대했다. 그래서 매장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고, 손님의 시선을 사로잡을 다양한 상품들을 갖춰놓고는 세련된 말투로 손님을 끌었다. 그러나 많은 소비자들은 이런 의류매장을 부담스러워한다.
야나이 사장은 이런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장사라는 게 온통 '파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비즈니스는 고객이 '사주어야' 이뤄지는 것인데, 파는 것에만 집중하는 상업주의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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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을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모험주의 경영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회사를 가지고 모험을 한다면 회사는 금방 망하고 말 것입니다. 실패해도 괜찮을 정도의 위험을 계산한 다음,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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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 사장은 "3년 후에 주식 상장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그대로 실천했다. "올 시즌에는 플리스를 2,600만 장 판매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팔아치웠다. 이렇게 뛰어난 실적과 함께 조금씩 신용을 쌓아간 것이다. 신용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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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몇 번이고 실패하면서도 신뢰를 잃지 않았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원칙을 중시하고, 그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총리가 국민의 신용을 잃게 된 것은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전혀 달라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해 일관된 발언을 했다면, 결과가 다르더라도 결코 신뢰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실패한다는 것과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일관된 태도를 유지한다면 신뢰는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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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로 넘쳐나는 광고의 홍수시대에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 유니클로의 광고는 매우 특이했지만 인상적이었다. 사실 심플하면서도 세련되고 스마트한 이미지의 유니클로 광고들은 모두 걸작이었다. 신문광고에서도 거의 유사한 전략을 사용했다. 이 심플하고 깔끔한 광고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유니클로는 가격을 포함한 상품력에서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만약 상품이 주목을 받게 되고, 고객이 상품을 만지기만 한다면, 반드시 구매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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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의 기반이 내려앉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버블경제가 무너진 직후부터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은 장기침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때 소매업자들은 "소비자의 요구를 알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변명으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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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 사장은 항상 수동적인 입장으로 일관한 소매업계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업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또 초창기부터 제조업체에서 구매해서 팔기만 하는 소매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종적으로는 SPA 방식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소비자에게 가장 가까운 소매업자가 주체성을 갖고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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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유니클로를 더 많이 입고 다녔으면 좋겠스빈다. 한 사람이 위부터 아래까지 유니클로로만 갖춰 입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유니클로는 '에르메스'나 '구찌'에도 어울리고 '갭'에도 어울리는 이른바 범용 부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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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의 상품은 믿을 수 있으며 유니클로의 상품을 사면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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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의 상품은 대량 생산품입니다. 그러나 패션 감각이 있는 사람, 돈이 있는 사람, 특정 패션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유니클로의 상품을 구입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실패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실패할 거라면 빨리 실패를 경험하는 편이 낫습니다. 비즈니스는 이론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제 성공 비결입니다."
"광고지는 손님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대신 써달라고 맡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