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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일기를 안쓰면 섭섭한 일요일 밤


상상 하나.

능력이 된다면 탭기능이 전혀 없는 웹 브라우저를 만들어보고 싶다. 거기엔 한 가지 페이지만 로딩된다. 인터넷에 접속을 하면 링크를 타고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전부 다 띄워놓고 결국엔 내가 왜 이걸 띄워놨었는지, 무얼하러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지 까먹을 때가 종종 있다. 멀티태스킹 능력은 극도로 디지털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되고, 구글 크롬도 뛰어난 기술력으로 모든 탭의 웹이 빠르게 로딩되어 호기심, 욕구를 즉각 충족시켜주곤 하지만, 정작 집중해야 하는 일에 방해가 될 때가 많다. 조금 불편하고 답답할 수는 있어도 내가 볼일보고 있는 웹사이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탭기능이 없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멀티태스킹 잘 못할 수도 있고, 하고싶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 하나.

연애는 결핍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가진 결핍 때문에 연애를 시작할 수도 있고, 연애 중간에 결핍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 결핍은 연애 중에 물론 어느 정도 채워지긴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결핍의 반대급부인 자신의 개성이 더 공고화되기도 한다. 후자의 상황이 극단화되는 순간 결핍은 결핍이 아닌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결핍이 아니니까. 그런데 또 신기한 건, 어쨌든 마치 위험을 방지하는 면역체계를 갖춘 우리 몸처럼, 정신 역시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상대에게서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정신적/성격적 면역체계를 부지불식간에 형성하고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나이고자 관계를 깨트렸다 하더라도, 그 때의 나는 이미 예전의 결핍이 아닌, 다른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다른 나를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변의 어떤 사람들은 곧잘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이 결혼도 잘한다고 그런다. 진짤까? 에이. 진짜여도 그냥 나는 내 스타일로 살련다. '많이'의 기준이 뭔데.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또 달라지고 휘청거릴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나를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내가 현재 크게 결핍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나의 결핍을 이미 이전 연애에서 많이 보완받았기 때문에 달라진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매우 즐겁다. 저기저기 하늘에 내게 주셨던 행운에 감사드리고 싶다. 


느낌 하나.

잔향을 남기는 사람, 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여태까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지만, 이번처럼 정말 구체적으로 잔향을 몸으로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과 반나절 채 안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마치 좋은 차를 한가로운 자연에서 다소곳이 마신 듯한 시각적인 환영이 내 주변에 스프레이처럼 뿌려져 향기를 잠깐동안 남기고 사라졌다. 잔향을 남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되었고, 또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의 잔향을 느끼기 위해선 심적인 여유로움이 필요하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아무리 친한 사람과 약속을 갖고 헤어졌어도 바로 해야할 일을 생각하곤 했던 과거가 살짝 후회가 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만난 사람과의 대화들 중에 잔향을 놓친 경우는 없었을까 싶어서.   


아쉬움 하나.

이번 주말에 마키아벨리 군주론과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비교하는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시작도 못하고 월요일을 맞는구나. 사실 주제가 주제인만큼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주는 모두가 군주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우울증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