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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리장정





중국 만리장정

저자
홍은택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5-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상하이, 시안, 베이징, 중국 역사의 세 꼭짓점을 따라 달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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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일어서려다 주저앉은 게 벌써 몇 번째다. 이제는 움직일 때다. 마치 먹이 주위를 맴돌다가 느릿느릿, 그러다 쏜살같이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사자처럼. 


나도 모르는 일이다. 아내의 질문처럼 왜 하필이면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지. 남들처럼 차 타고 다니면 안 되는 건지. 왜 중국인지. 그 이전에 직장을 왜 관둬야 하는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따져보자.


인류는 앉아서 다른 사람한테 일을 시키면서(노예사회), 기계에 일을 시키면서(산업사회) 그리고 돈에 일을 시키면서(자본사회) 걷거나 달리거나 날아다니는 동물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앉아서 일을 시킨다는 것은 머리로 일을 한다는 뜻이다. 수백만 년 동안 걷거나 달리는 데 최적화돼 있는 인간의 유전자에 없던 일이다. 앉아 있는 것은, 머리만 돌리는 것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몸과 머리의 불균형을 낳는다.


물론 인간이 앉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등산과 마라톤을 하면서 심신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육된 움직임이다. 바람에 묻어나는 냄새를 느끼면서, 바스락거리는 풀잎에 스치면서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그것은 움직임의 모사이지, 움직임이 아니다. 움직임은 공간에 대한 오감을 가동하는 행위이며 공간에 대한 지각을 넓히는 일이다. 그런 움직임을 통해 인류는 먹을 수 있는 사과를 찾아냈고 파푸아뉴기니까지 이동했다. 움직임은 발견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A라는 지점에서본 풍경과 B라는 지점에서 본 풍경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A에서 B로 이동하는 것은 발견하는 행위다.


줄여 말한다면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복제하기보다는 그냥 벌판을 달리고 싶은 것이다. 박차고 일어나 가보지 못한 세계로 뛰어들고 싶다. 그게 오랜 주입식 교육과 좌식 노동을 통해 순치돼버린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자 DNA의 명령에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규격화되지 않는 삶의 추구야말로 좀 더 본성적이지 않을까.


(중략) 아내의 얘기는 자동차나 기차로도 여행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일 텐데 자신의 두 다리 외의 동력장치에 실려 움직이는 것은 이동이지, 여행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집 밖을 나설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모든 순간순간을 온전한 여행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때로는 고통스럽겠지만 끝내는 웃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 프롤로그 '만리장정(万里长程)의 출사표' 중



중국여행을 떠나기 전 부랴부랴 아이패드에 담아, 아마 eBook으로썬 첫번째로 완독한 책. eBook은 와이파이 신호가 없는 아웃도어와 궁합이 잘맞는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한 책을 다시 책꽂이에 꽂아놓게 되는 것이 민망하여, 아이패드를 갖고 가는 김에 중국여행관련 책을 하나 골라넣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책을 살펴보다가 프롤로그에서 꽂혀 절반 가량을 다 읽어버렸다. 


저자는 동아일보 기자,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NHN 이사를 거쳐 (중국 만리장정을 마친 이후부터) 현재는 카카오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잘나가고 있는 회사의 부사장이란 사람이 중국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고, 어떤 이유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근데 이거, 읽다보니 '카카오'가 중요한게 아니라 '기자 출신'이란게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던 중요 포인트였다. 글이 황하강처럼 빠르게 몰아치며 흘러흘러가는데, 시인이나 소설가의 자전거 풍경과는 다르다. 중국의 역사적 배경들과 갖가지 무용담(?)들이 버무려져 앞에 '진격의' 자전거 여행이라고 붙어야 맞는 것 같다. 


상해에서 시작해 시안을 찍고 북경을 돌아 다시 상해로 돌아오는 삼각의 여정. 어떠한 교통수단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전거로만 이동하는 여행. 이렇게 심장이 들썩이도록 무모한(중국의 여러 괴담들을 생각해보라. 여러 번 갔어도 항상 '무언가 큰 공간'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여행담을 읽고 있자면 성별을 잘못 타고난 것 같아서 후회(?)도 된다. 글빨말고도 체력 좋은 저자 덕분에 중국을 자전거로 누비는 호연지기를 누릴 수 있다. 아, 나도 사육된 움직임에서 벗어나고파!  


올해 가장 재밌게 읽은 책. 서문에 반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