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로부터 성적흥분을 느끼는 인물이 있다. 제임스 발라드(J. G. Ballard)의 문제적 소설 『Crash』의 주인공 제임스와 그의 친구 보건은 '차'라는 기계문명을 통해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도착증을 보여준다. 차라는 금속성의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몸의 연장(extension)으로 느끼는 이들은 교차로에서 두 차가 부딪치는 각도와 방법의 다름에 따른 성적/상처의 오르가즘을 추구한다.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를 인간의 확장된 감각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에로티시즘을 입힌 시각이 신선하다. 일상생활의 물건에 대한 페티쉬적 상상력을 SF라는 장르를 통해 극단화시킨 것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오늘날 기계문명이 얼마나 인간의 감각에 가깝도록 발전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기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휴대폰은 우리가 매일 가까이하는 테크놀로지의 핵심 중 하나다. 때문에 휴대폰은 인간과의 오랜 친밀함 끝에 자동프로그램화 된 개꼬리의 흔들림처럼 충성스럽게 진화한다. 최근 국내 휴대폰 시장을 휩쓸고 있는 트렌드는 바로 '촉각형 휴대폰(터치폰)'. 손끝으로 톡톡 화면(터치스크린)을 직접 느끼고 만지면서 조작하는 것이 기존의 모델들과 차별되는 점이다. 휴대폰의 화면이 실세계에 가깝도록 색을 먹게 된 것처럼, 이젠 시각에서 촉각만족으로 트렌드의 관심사가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만진다'는 개념으로의 이행이다. 버튼을 누름이 단순히 기계를 명령적으로 조작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면 만진다는 것은 마치 다른 생명을 친근감 있게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드럽고 감성적인 변화에 대해 국내 S사(社)의 터치폰 모델이 출시 8개월 만에 150만대가 팔리는 등 수요로부터의 뜨거운 호응이 표출되고 있다. 물론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와 애플의 아이폰(iPhone)이 '터치'의 개념을 선점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휴대폰으로 확장 및 보급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휴대폰 기술의 진화와 보편화는 작동방식의 변화로만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적 맥락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높은 S사의 터치폰 브랜드 '햅틱팝(Haptic Pop)'과 L사의 '쿠키(Cooky)폰'의 TV광고가 인상적이다. '촉각의'라는 뜻을 가진 햅틱과, 만지면 탁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팝'이 결합된 햅틱팝은 광고전면에 '이젠 검지를 세워라!'라는 문구를 내세우고 있다. 광고출연자들이 모두 검지로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슬며시 '검지족의 도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휴대폰 기종모델들이 사람들의 엄지를 움직이게 했다면, 새로운 기술과 광고는 사람들에게 검지의 새로운 능력을 소환 및 부여할 것을 명령한다. 또 다른 터치폰인 쿠키폰의 광고는 아예 몸 전체를 움직일 것을 권하고 있다. 여자광고모델은 휴대폰으로 숫자계산게임을 하다가 계속 틀리자 "안해 안해! 사람이 몸으로 움직여야지"라고 말하며 (중력센서가 장착되어 흔들림에 반응을 하는) 쿠키폰을 들고 낚시게임을 한다. 실제 낚시를 하는 것 같은 움직임과 함께 눈과 손은 휴대폰 화면으로 가 있다. 터치폰과 그 속의 게임컨텐츠는 우리의 온몸, 몸의 유희방식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촉각형 휴대폰은 몸의 반경과 기능을 규정하는 동시에 넓혀주기도 한다. 기계가 인간의 몸짓에 대해 반응해 움직인다는 것은 곧 신경이 휴대폰에까지 이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의 감각기관으로서 반응하는 터치폰은 '만짐의 대상'이 된다. 마치 우리 자신이 몸의 일부를 문지르거나 긁거나 자극하는 습성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만진다'는 것은 습관과 친교, 교감의 기능 및 표현인 동시에 성적인 의미도 빠질 수 없다. 영어에서의 'fingering(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림)'이 성적 자극을 주기위한 행위, 애무를 칭하듯이 말이다. 역시 기계에 대한 터치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기계 자체의 표면에 대한 에로티시즘뿐만 아니라 기계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만지고자 하는 욕망의 에로티시즘도 가능하다. 혹은, 하나의 확장된 신체기관으로서의 터치폰이 신체적 성적욕구분출의 기능을 대체해 줄는지도 모를 일이다. 화면을 통해 애완견을 쓰다듬고 돌보는 닌텐도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듯이, 이 기계는 인간대체적인 가상의 '정서물'이란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영화 「A.I.」에 등장했던 섹스로봇과 같이 촉각의 기능을 전문적으로 담당해야 하는 기계의 등장은 더 이상 공상만은 아닐지 모른다. 몸의 욕망은 감각기계로까지 파고들어 즐거움을 주문하고 있으며, 욕망의 사회적 표출이 노골적일수록 테크놀로지는 기계대체적이고 가상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내놓을 것이다. 오늘날의 테크놀로지와 몸은 서로를 만짐으로써 각자의 에로티시즘-돈, 정서적 쾌락-을 채운다. 소설 『Crash』의 주인공들은 더 이상 변태적 성욕 이상자로 매도될 수 없다. 그들은 테크놀로지적 욕망에 충실한 우리의 모습이다.
2009-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