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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간 한복쟁이, 이영희

 

 

세현이가 근래 사가지고 온 이영희의 책을 마쳤다.

이영희의 한복은 아이구글(iGoogle) 아티스트 스킨에서 처음 접하고 아름다움에 빠졌었다.

책으로 만나니 반가웠다.

 

이영희는 역시 프로페셔널이다.

패션비즈니스는 브랜드와 이미지로 승부하는 것이라고, 단번에 그리고 단숨에 말할 수 있다.

비록 늦깎이로 시작하긴 했지만 30년 동안 패션의 중심지에서 고군분투한 경험이 묻어난다.

그녀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처지라곤 하지만, 아래서 올려다보고 있는 나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걸까? 왠지 같아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소위 성공한 사람들에서 느껴지는 도전의 포쓰는 이영희도 예외가 아닌듯 싶다.

현재 일흔이 넘으셨다는 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특별히 지금이 내게,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다', '철없고 겁 없기로는 한복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나 칠십을 넘은 지금이나 똑같은 나 이영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라며 순간순간과 행간을 도전과 열정으로 채운다.

 

이영희는 자신을 패션쇼 매니아, 라고 표현했는데 이러한 고상한 종류의 '오타쿠'에게서 역시나 배울 점도 많고 떠오르는 생각도 많다.

'패션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처음과 마지막이 결정되면 가운데는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는 구절은 특히나 어떤 구성에 있어서도 매력적인 서두와 끈기있고도 전체를 아우르는 결말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무엇보다도 글에서 그렇지요.

 

이영희가 아끼는 색깔이 바로 회색이라고 한다. 나는 강한 색을 주로 좋아하는 편이라 왜 그런가 했는데, 그녀의 설명에 천 번, 만 번 설득되어 버린다. '회색은 신비로운 색깔이다,' '세상의 어떤 것을 태워도 결국은 모두 회색이 되고 만다,' '한복에서는 흑과 백은 개성이 너무 강해서 다른 색깔과 화합하지 못한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절에서 느꼈던] 그런 감각들이 내게 회색이라는 색에 대한 원초적 이미지를 만들어 준 것 같다.' 특히 원초적 이미지가 어린 시절에서 만들어졌고 그걸 추구하게 된다는 말은 나의 어른으로서의 생애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성격이나 심상, 분위기로써 나타나는 것 같다.

 

이영희는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마음 속에 체크표시를 해두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솜과 이불 장사, 그리고 한복디자이너 마지막으로 한복에서 태어난 '바람의 옷' 주인까지.

그녀의 말로도, 자신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뭐가 될 지 모르는 채 살아왔단다.

'미리 알고서 한 일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나는 결과를 예상하고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결코 아니다. 그저 그 순간 내가 좋아서 미친듯이 열심히 일을 한다.'

글쎄 잘 모르겠다. 인생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고, 흘러가는 대로 놔두어야 하는 것일까.

난 현재 스스로 '난 목표가, 지향점이 사라진 [공황]상태'라고 남들에게 거의 '소개'를 하고 다닌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가 없는 상태가 과연 부끄럽고, 피해야 할 것이고, '하루 빨리 시간을 들여서라도 찾아야 할' 그런 것일까?

그것은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한번은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는 말에 반한 적도 있지만 그 성격이란 것도 변하는 것이 아닌가?

글쎄 잘 모르겠다.

 

그밖에

이영희가 천연염색을 배운 스님의 말씀이라던 '직접 자기 손으로 염색을 하면서 체온으로 느껴 본 사람과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색깔에 대해 완전히 다른 눈을 가지게 된다'는 부분과, 이영희씨의 생각인 '오래도록 그런 문화들은 여자들의 문화라고 하여 하대를 받아왔지만 현대에 와서 국제적인 상품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문화들은 다 우리 어머니들의 문화다,' '생활을 예술로 만들 줄 알았던 우리나라의 현명한 여인들이 만들어 낸 문화가 현대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되어주고 있다'는 부분에서 잔잔한 감동과 깨우침을 받았다.

 

'서양 사람들은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복에 대해 편견이 더 많은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는 이영희의 깨달음은 맞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어제도 WDF준비오티로 류감독님의 강의를 잠시 들었는데 하셨던 말씀이 바로 '서양사람들보다 한국사람들이 일렉음악들으며 [마약도 필요없이] 더 잘논다'는 말씀이었다. 어디서 왔는가, 도 창조의 입장에서 중요할 수는 있지만 어디서 그 문화가 제일 잘 향유될 수 있는가, 도 현대에선 소비의 입장으로 주목받아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코 샤넬이 했다는 '카피를 하려면 얼마든지 카피하라'는 말에서 이영희는 코코 샤넬 자신의 창의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보았다. 정말로..........................멋진 것 같아. 또한 이영희의 책에서 '실패를 내 곁 가까이 감각의 대상으로 두는 것'이란 표현이 인상적이고 적확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오는 배색감각' (우리 한복의 아름다운 색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내용에서)이란 표현도 매우 좋았다.

 

마지막으로 '워낙 오랜 경력이 쌓이다 보니, 대충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도 남들이 모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는 고백과도 같은 프로페셔널의 솔직함이 엿보여 되레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걸 알기에 본인도 그런 문장을 자서전과도 같은 저서에 포함시킬 수 있었을거다. 참으로 느낀 점이 많았던, 눈과 뇌세포가 즐거웠던 독서였다.

 

<퍼뜩생각>

 

1. 갑자기 두루마기 사진을 보고 있다가 떠오른 생각을 꼭 적어놔야 겠다.

나는 오래전부터 '리본은 언제부터 여성의 전유물이 되었을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루마기에서 이 리본이란 것이 꼭 여성의 전유물은 아니었다는 것을, 특히 우리 문화에서, 흠칫 깨달아 버렸다.

 

2. 이영희의, "온 몸이 녹아버리게 하는 부드러운 색감"

 

3. 패션쇼의 공연산업화에 대해서. 이미 진행되고 있으리란 건 분명하지만 연극, 영화와 같은 수준처럼 인정받고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

 

4. 단국대의 석주선 박물관, 동생과 꼭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