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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낯익은 세상

저자
황석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6-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버려진 것들의 세상, 그 위에서 자라나는 삶!황석영이 작가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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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든 나무든 바위든 강이든 모두가 장애물이고 괴물은 나를 출발점으로 떨어뜨리려는 나의 적일 뿐이다. 나는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한없이 나아가면서 건너뛰고, 솟구쳐오르고, 붙잡고, 매달리고, 물리치면서 점수를 올려야만 한다. 겨우 일차적 성취를 끝내고 나는 높다란 성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다시 이르렀다. 이미 내가 걸어온 길은 화면 밖으로 밀려나가 돌아갈 퇴로도 없다. 이것은 무수하게 반복되는 행진이며 최대의 성취에 이른다 할지라도 언제나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206p


망할 것들아. 여기 니들만 사는 줄 알아? 니덜 사람 새끼 다 없어져도 세상은 그대루야. 

-218p


   어디루 떠나지 말구 우리 같이 살자. 이렇게 헤지지 말구.

빼빼엄마는 옮겨온 물건들을 그 안에 깊숙이 넣었고 딱부리도 물건들을 간추려서 그녀에게 차례로 넘겨주었다. 그녀는 물건들이 포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하게 넣었다. 마치 그것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눕혀주는 손길 같아 보였다. 딱부리가 제 동작에 골똘해 있는 빼빼엄마에게 무심코 말을 걸었다. 

   이런 못쓰는 물건들을 왜 소중하게 감춰두는 거예요?

   서루간에 정들어서 그러지.

   그럼 저어기 쓰레기장 물건들은요?

빼빼엄마는 검댕이 잔뜩 묻은 더러운 얼굴을 돌리고 야멸치게 말했다.

   저것들은 사람들이 정을 준 게 아니잖아!

-225p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234p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