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동물애호가인 한 동성친구에게 "진짜로 동물을 사랑한다면 구두, 핸드백 같은 가죽제품도 지양해야 하는거 아닐까?"라고 질문을 제기했다가 친구 하나 잃을 뻔 했던 적이 있다. 왜 개만 특별 취급해야 하는가, 그것도 인간의 편견아닐까? 하는 생각에 입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되어 물었던 것. 나의 친구는 정말 유기견을 구하러 다니고 모피운동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행동파였기 때문에 머리로만 사고하는 것 같은 나에게 화가 단단히 났던 것 같다. 물론 친구와는 바로 화해했고, 지금은 공통의 주제에 공통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입장의 스펙트럼 상 위치는 조금 다를지라도.
아마도 내 주변에 동물애호협회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친구가 없었더라면, 나도 이 책을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뻔히 이미 수십년 동안 자행해온 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 이거만큼 머리아프고 불편한 일이 어디있을까. 나는 육식도 괜찮다고 남들에게 말할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를 테스트해보기 위해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제 육식하는게 꺼려진다. 남들이 뭐래도.
저자는 주로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에 대해 꼬집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축산업의 형태로, 축산업이 점점 공장화, 대형화되어온 역사를 반영한다. 이미 미국 국내 육류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스템이고. 공장식 축산업이 끔찍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소외되어 버린다.
이 공장식 농장 농부들은 동물들을 죽이지 않고서 얼마나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지를 계산해요. 그게 바로 사업 모델이지요. 동물들을 얼마나 빨리 자라게 만들 수 있는지, 얼마나 빽빽이 몰아넣을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먹일 수 있는지, 죽이지 않고서 얼마나 오래 병든 상태로 둘 수 있는지.
현대 사회의 우리가 먹게 된 건, 더 이상 '동물'이 아니라 '단백질 덩어리'다.
모든 새들은 비슷한 프랑켄슈타인식 유전학 혈통에서 나오고, 모두 갇혀 있다. 산들바람이나 따스한 햇볕도 즐기지 못한다. 횃대에 앉는다든가, 주변 환경을 탐색한다든가,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는 등 닭이라는 종 특유의 행동 중 어떤 것도 해 볼 수가 없다. 항상 질병이 만연해 있다. 고통이 유일한 규칙이다. 동물들은 언제나 하나의 물건, 하나의 몸뚱이로 취급된다.
미국이란 넓은 땅덩이를 가진 나라의 문제상황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도 국내 축산농가들을 둘러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같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산된 닭, 돼지, 소 등이 아주 멀쩡히 우리나라에 반입되고 있지 않은가? 어찌 무관하다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더 놀라운 정보 하나. 미국 축산업은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저자가 정부와 업계가 발표한 통계와 자료에 입각하여 살펴본 결과, 오히려 어마어마한 공급을 지탱하기 위해 수출처럼 수요를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정부 및 업계 사람들의 공통 목표가 존재할 정도라고 한다. 공장식 축산을 해야 가격경쟁력이 생기니까 늘어나는 것이고, 육류소비자들은 점점 유전자 조작과 위생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단백질 덩어리만을 얻게 된다. 내가 먹는 고기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전까지는.
웨이터가 주문을 기다릴 때, 혹은 쇼핑 카트나 장바구니에 마음 내키는 대로 뭔가를 골라 담을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골리앗 같은 식품 산업 전체가 궁극적으로는 움직이고 결정된다.
현대사회에서 어쩌면 투표보다 더 파워풀한 '돈'이라는거, 진짜 평범하고 일반적인 한 시민이 행사할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권력이다. 육식 그 자체보다는 고기를 만들어내는 현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나는 더이상 '동물다운 삶을 살았던 동물'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고기를 먹고 싶지, 소비자를 미심쩍게 만드는 뭔가 말해지지 않은 것 같고, 불투명한 느낌을 갖고 고기를 대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땐 병아리를 치면 닭이 되고, 닭들이 개미도 먹고 횃대에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퍼덕퍼덕 날기도 하고 햇살도 쬐고 '닭 다운 삶'을 영위하다가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는데. 나는 살코기 부분을 늘리기 위해 알 수 없는 영양제를 주입받고 부리는 상처안나게 뜯겨나가고 피부병걸리고 갇혀있다보니 다리와 날개에 힘도 없는, 그런 닭을 먹었을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니 너무 슬프고 역겹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닭 다운 삶'을 존중하면서 닭을 치는 양계장과 축산농가가 알려져야 하고, 그들이 돈을 벌게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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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 실제로는 각각 분명히 유전적으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닭, 육계와 산란계가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닭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전혀 다른 몸에 전혀 다른 신진대사로 움직인다. 산란계는 알을 만든다. 육계는 고기를 만든다.
여기에서 온갖 기묘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산란계가 낳은 수컷들은 모두 어떻게 될까? 만약 인간이 그 닭들한테서 고기를 얻을 계획이 없고, 자연은 그 닭들이 알을 낳도록 만들지 않았다면, 그들은 무슨 기능을 할까?
그들은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산란계들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평아리들이 1년에 2억 5000만 마리 이상 폐기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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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 어획은 의도적으로 현대의 조업 방식 중 하나로 정립된 이래로, 우연히 잡힌 바다 생물을 말한다. 정말로 '우연히' 잡힌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
'본능'은 동물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게 지능적일 때마다 동물의 그 선택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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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장식 농장 농부들은 동물들을 죽이지 않고서 얼마나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지를 계산해요. 그게 바로 사업 모델이지요. 동물들을 얼마나 빨리 자라게 만들 수 있는지, 얼마나 빽빽이 몰아넣을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먹일 수 있는지, 죽이지 않고서 얼마나 오래 병든 상태로 둘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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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동물에 관심이 있어요. 난 그렇게 믿습니다. 그저 알고싶은 마음이 없거나 돈을 내고 싶지 않을 따름이지요. 모든 닭들 중에서 4분의 1은 피로 골절을 겪어요. 잘못된 일이지요. 닭들이 꽉꽉 들어찬 곳에서 배설물도 서로 못 피하고 해는 구경도 못해요. 발톱이 닭장 창살을 감고 자라요. 잘못된 일이에요. 도살될 때에도 동물들을 도살된다는 것을 느껴요. 잘못된 일이지요. 사람들도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안다오. 신념까지도 필요 없소. 그저 행동을 바꾸기만 하면 돼요. 내가 제일 낫다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내 기준에 남들도 따라야 한다고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살라고 설득하는 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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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새들은 비슷한 프랑켄슈타인식 유전학 혈통에서 나오고, 모두 갇혀 있다. 산들바람이나 따스한 햇볕도 즐기지 못한다. 횃대에 앉는다든가, 주변 환경을 탐색한다든가,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는 등 닭이라는 종 특유의 행동 중 어떤 것도 해 볼 수가 없다. 항상 질병이 만연해 있다. 고통이 유일한 규칙이다. 동물들은 언제나 하나의 물건, 하나의 몸뚱이로 취급된다.
184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 조치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공장식 축산업계가 최근 공공 보건 전문가들에게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업계의 막강한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뻔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준 권력이다. 공장식 축산 동물 제품(그리고 동물 제품으로 팔리는 물)을 먹음으로써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업계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자금을 대 주기로 선택한 것이다.
186
내가 이 모든 과학적 사실을 들이대지 않아도 우리 마음속 한쪽에서는 뭔가 끔찍하게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지 모른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양분이 지금 고통에서 나오고 있다. 누군가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촬영한 필름을 보여주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공포 영화이리라는 것을 다들 안다. 아마도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것 이상으로 더 잘 알면서 기억 속 어두운 곳에 억눌러 놓고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 고기를 먹을 때 문자 그대로 고문당한 살을 먹고 사는 것이다. 점차 그 고문당한 살이 우리 살이 되어 가고 있다.
205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업 돼지 품종들은 유전자를 너무 많이 바꾸어 놓아서, 이와는 반대로 보통 실내 온도가 조절되는 건물 안에서 햇빛과 계절의 변화로부터 차단되어 키워져야만 한다. 우리는 가장 인공적인 환경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생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유전학 지식의 가공할 힘을 더 고통 받는 동물들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적으로 쓰고 있다.
206
웨이터가 주문을 기다릴 때, 혹은 쇼핑 카트나 장바구니에 마음 내키는 대로 뭔가를 골라 담을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골리앗 같은 식품 산업 전체가 궁극적으로는 움직이고 결정된다.
252
베를린 수족관에서 물고기 앞에 선 카프카의 모습.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후로, 새롭게 찾은 평화 속에서 그의 시선이 한 물고기에 가 닿는다. 카프카는 그 물고기가 자신의 보이지 않는 가족임을 깨달았다. 물론 자기와 대등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존재로서.
261
저는 목장주의 책임이 단지 동물들에게 고통이나 학대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것뿐이라고는 보지 않아요. 우리 동물들에게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믿어요. 우리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빼앗으니까, 동물들은 삶의 기본적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드러누워 햇볕을 쬔다든가, 짝짓기를 한다든가, 제 새끼를 기르는 것 등이지요. (...) 어느 농장에서도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요. 하지만 생명을 빼앗을 목적으로 동물을 키울 요량이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이 따르는 거예요!
277
제가 고기를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많은 동물들이 자연 상태에서 다른 동물의 살을 먹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150만 년 전에 고기를 먹기 시작했던 인간과 인류 이전의 조상들도 포함됩니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과, 동물과 인류의 역사 대부분 시기를 통틀어 보아도 고기를 먹는 것이 단순히 쾌락의 문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건 생존을 위한 기본 원칙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