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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당구대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네 개의 빨간색과 하얀색 공 안에도 죽음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마치 미세한 티끌처럼 폐 속으로 들이마시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과 미도리의 대화.

(미도리) "부자의 최대 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령 내가 반 친구한테 뭘 좀 하자고 하면 상대는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하게 돼. 내가 가령 지금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니까. 비참할 뿐이지. 예쁜 여자가 '나 오늘은 얼굴이 엉망이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같거든. 못생긴 여자가 그런 소릴 해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런 게 내 세계였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