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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nt -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마케팅

스펜트섹스진화그리고소비주의의비밀
카테고리 경제/경영 > 마케팅/세일즈
지은이 제프리 밀러 (동녘,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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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엔 심리학을 공부한 대학 동기들이 많다.

그 중에도 특히 '진화심리학'에 꽂혀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만났을 때 평소와 달리 차려입고 있으면 '혹시 너 배란기에 임박한거 아니냐'는 농담섞인 인삿말로 대화가 시작되기도 한다.

그들의 별 다섯 개짜리 추천으로 읽게 된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마케팅' 책이 바로 이 <스펜트>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을 우수/열등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도 없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사실 군더더기 없이 솔직하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생물의 역사는 적자생존 아니더냐.

저자는 책에서 (1) 현대사회에서 '마케팅'이 갖고 있는 진화심리학적 의미를 고찰하고, (2) 현재의 광고와 마케팅을 진화심리학적인 언어로 해석해주고 있다. 그리고 (3) 마케팅을 비롯한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인간들의 근원적인 욕망의 발현임을, 그리고 이를 이용하기도 함을 주장한다.

광고 마케팅이란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사례들을 다수 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무엇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것에서 핵심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이 던지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과 설명들을 따라가는 것이, 압박스런 두께에도 불구하고, 너무 즐거웠다.

인간은 자신들의 좋은 형질(지능, 개방성, 성실성, 친화성, 안정성 그리고 외향성이란 생존에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보이지 않는' 여섯가지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소비를 하고, 마케터들은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브랜딩을 하고, 광고를 생산해낸다는 것이 책의 요지. 저자는 마케팅을 "사람들이 기꺼이 구매할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함으로써 인간의 욕구를 채우려는 체계적인 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경영학에선 '시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한 명 한 명의 개인들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마케팅이 더욱 실체적이고 설득력있게 들린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의 욕구를 토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상깊었던 것은, 성격을 분류하는 여섯가지 형질 중에서도 나의 '개방성'이 매우 높았다는 것인데(기존에 해왔던 소비나 경험들을 토대로 봤을 때), 특히 저자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개방적인 젊은이들이 소비할 만한 정신병 유발 제품들을 생산해낸다"면서 그 "품목"들을 나열해놓은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드리야르에 관한 수업"이란 항목에서 더 흠칫했다. 내가 대학시절 엄청난 흥미를 갖고 빠져들었던 것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간단히 말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기호'일 뿐이라는 것.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됨)인데, 세상의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를 극복하기 전까진 보드리야르가 신이고 'Simulation and Simulacra'가 바이블인 줄 알았다. 사실은 긍정하기 위해서 부정하는 것을 배웠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결론은 '개방성'은 적당할 때 진화에 도움된다는 거.

책을 읽고 결국 학자는 역시 학자일 뿐이구나라고 느껴지긴 했다. 마지막에 가서 그럼 어떤 식으로 소비를 해야 현명한 것인가라는 논의로 책을 맺을 때, 소비주의를 긍정하는 것도 아니고 부정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태도로 주장이 불분명하다. 브랜드 신제품을 정가를 주고 다 사는 것은 멍청하다고 단정지으면서도, 브랜드 신제품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본능적인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그게 나쁘게 여겨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게 정답을 구하기도 참 어려운 것이, 윤리적인 소비 그 자체로도 소비코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저자의 말마따나 마케팅은 "사회적 판단과 사회적 위장 사이의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군비 경쟁"이 아닐까 싶다.

마케터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절대적 추천. 아니어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