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도 특히 '진화심리학'에 꽂혀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만났을 때 평소와 달리 차려입고 있으면 '혹시 너 배란기에 임박한거 아니냐'는 농담섞인 인삿말로 대화가 시작되기도
한다.
그들의 별 다섯 개짜리 추천으로 읽게 된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마케팅' 책이 바로 이 <스펜트>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을 우수/열등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도 없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사실 군더더기 없이 솔직하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생물의 역사는 적자생존 아니더냐.
저자는 책에서 (1) 현대사회에서 '마케팅'이 갖고 있는 진화심리학적 의미를 고찰하고, (2) 현재의 광고와 마케팅을 진화심리학적인 언어로 해석해주고 있다. 그리고 (3) 마케팅을 비롯한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인간들의 근원적인 욕망의 발현임을,
그리고 이를 이용하기도 함을 주장한다.
광고 마케팅이란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사례들을 다수
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무엇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것에서 핵심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이 던지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과 설명들을 따라가는 것이, 압박스런 두께에도 불구하고, 너무 즐거웠다.
인간은 자신들의 좋은 형질(지능, 개방성, 성실성, 친화성, 안정성 그리고 외향성이란 생존에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보이지 않는' 여섯가지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소비를 하고, 마케터들은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브랜딩을 하고, 광고를 생산해낸다는 것이 책의 요지. 저자는 마케팅을 "사람들이 기꺼이 구매할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함으로써 인간의 욕구를 채우려는 체계적인 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경영학에선 '시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한 명 한 명의 개인들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마케팅이 더욱 실체적이고 설득력있게 들린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나'의 욕구를 토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상깊었던 것은, 성격을
분류하는 여섯가지 형질 중에서도 나의 '개방성'이 매우 높았다는
것인데(기존에 해왔던 소비나 경험들을 토대로 봤을 때), 특히
저자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개방적인 젊은이들이 소비할 만한 정신병 유발 제품들을 생산해낸다"면서 그 "품목"들을
나열해놓은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드리야르에
관한 수업"이란 항목에서 더 흠칫했다. 내가 대학시절
엄청난 흥미를 갖고 빠져들었던 것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간단히 말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기호'일 뿐이라는 것.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됨)인데, 세상의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를 극복하기 전까진 보드리야르가 신이고
'Simulation and Simulacra'가 바이블인 줄 알았다. 사실은 긍정하기
위해서 부정하는 것을 배웠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결론은 '개방성'은 적당할 때 진화에 도움된다는 거.
책을 읽고 결국 학자는 역시 학자일 뿐이구나라고 느껴지긴
했다. 마지막에 가서 그럼 어떤 식으로 소비를 해야 현명한 것인가라는 논의로 책을 맺을 때, 소비주의를 긍정하는 것도 아니고 부정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태도로 주장이 불분명하다. 브랜드 신제품을 정가를 주고 다 사는 것은 멍청하다고 단정지으면서도, 브랜드
신제품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본능적인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그게 나쁘게 여겨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게 정답을 구하기도 참 어려운 것이, 윤리적인 소비 그
자체로도 소비코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저자의 말마따나 마케팅은
"사회적 판단과 사회적 위장 사이의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군비 경쟁"이
아닐까 싶다.
생산 지향적인 태도에서 마케팅 지향적인 태도로의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이 변화는 결정권이 기관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다. 생산이 노동자들을 기술의 종으로 만들었다면, 이상적으로 볼 때 마케팅은 소비자를 기술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69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우리가 마케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제품이 물질적인 것인지 문화적인 것인지, 오프라인 상점에서 팔리는지 온라인에서 팔리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제품이 생산자의 편의보다는 소비자 선호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구상되고 디자인되고 검사되고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것이다.
71
마케팅은 '물질주의'를 조장하는 것에 있지 않다. 실은 그 반대다. 마케팅은 주관적인 기쁨, 사회적 지위, 로맨스, 생활 방식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나르시시즘을 불어넣는 사이비 심령술을 조장하고, 그럴 때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연상 이미지가 제품의 실제 물리적 질보다 더 중요해진다. 제품과 소비자의 갈망을 연결시켜서 제품을 그것의 물리적 형태가 보증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소비자에게 가치 있게 보이게 만드는 것, 이것이 광고와 브랜드화의 핵심이다. 실은 마케팅은 어떻게 해서든 물질주의를 피하려고 한다. 소비자가 객관적인 물질적 특성과 가격만으로 제품을 비교한다면, 제품은 생필품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생필품은 경쟁적인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판매될 수 없다.
75
밈(The Meme)이란 기억하여 타인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이야기, 일화, 생각, 선전 구호, 시엠송 같은 정보 단위들이다. 눈에 띄고 기억할 수 있으며 쉽게 전달될 수 있는 밈(유명 인사에 대한 가십과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널리 퍼져 나갈 것이다. 우리와 상관없고 잘 잊히는 밈('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질량의 약 1,836배다' 같은 사실)은 대중의 의식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
마케터, 광고업자, 소매업자, 홍보 전문가로 일하는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월급을 받으며 날마다 저지르고 있는 일이 바로 밈 범행(대중의 견해와 선호를 만들어내는 의식적이고 고의적이고 제도화된 전략)이다.
<이것이 지름신이다>
87
나르시시스트들은 스스로를 자신만의 인생 이야기 속의 스타 혹은 자신만의 서사의 주인공으로 보며, 다른 모든 사람은 사소한 인물로 여긴다. 이들은 자신의 삶, 경력, 가족에 대해 자신 외의 다른 누구도 그 그림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들은 감각이 마비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더 강한 자극을 찾는다. 이들은 짜증을 잘 내고,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참는 능력이 떨어지고, 때때로 충동적이고 쾌락적인 극단적 행위들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한다. 또한 이들은 때때로 자신의 부풀려진 자부심과 실제 성취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지각하는데, 이것 때문에 자신의 가치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고, 주기적으로 자기를 의심하거나 우울증에 빠진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동등한 지위에 있는 타인들과의 격의 없는 교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극(소설 읽기, 텔레비전 시청, 마약하기, 자위행위)과 과시(지나치게 낭비가 심한 파티를 여는 것과 같이 지위가 낮은 추종자들을 향한 의례적인 과시)에서 즐거움을 찾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신기술에 밝은 나르시시스트들은 에고 서핑(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쳐서 무엇이 뜨는지 보는 행위)과 '블로그 스트리킹'(자신의 블로그에 개인 신상명세를 지나치게 자세하게 공개하는 행위)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99
무게당 비용이 금괴의 비용(파운드당 1만 4,000달러)에 진입할 때 우리는 좀 더 순수한 나르시시즘을 만난다. 고가의 지위 상징물(롤렉스 시계, 아이튠에서 다운로드받은 노래들로 꽉 채운 아이팟, 다이아몬드, 진짜 컬럼비아 대학 졸업장, 반 고흐의 그림), 외모와 성능을 높여주는 값비싼 약물(비아그라, 프로작, 보톡스), 쾌락을 위한 값비싼 약물(코카인, 헤로인, 엑스터시, LSD)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비주의에 낚이다>
117
가장 매력적인 형질들은 부, 지위, 취향이 아니다. 이들은 단지 모호한 가짜 형질들일 뿐이다. 이런 가짜 형질들은 다양한 문화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획득되고 과시되며, 개인의 일생 동안 그리 높은 안정성을 보이지 않고, 세대 간에 그다지 높은 유전성을 보이지도 않는다. 정말 매력적인 형질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적응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ㅡ신체 매력, 신체 건강, 정신 건강, 지능, 성격 같은ㅡ보편적이고 안정적이고 유전되는 형질들이다. 우리가 친구, 배우자, 동료, 스승, 정치 지도자가 될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가장 정확하게 평가하려는 형질들이 바로 이런 형질들이다.
130
제품의 형질 전달력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주장하면 너무 쉽게 거짓임이 탄로 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신 남성을 겨냥한 스포츠카 광고는 그 차를 몰면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주목을 더 끌 수 있다고 넌지시 말해야 한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광고 규제 기관이나 경쟁사들이 그 스포츠카의 운전자는 차의 가격 프리미엄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여성의 관심을 누리지 못하고, 유며 감각을 늘리는 것이 엔진 마력을 높이는 것보다 여성의 관심을 높이는 데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증명하기는 너무 쉽기 때문이다.
131
소비자들은 자기만이 광고의 언외 의미에서 제품의 신호 잠재력을 읽어낸다고 느껴야 하고, 사회적 지위와 성적 매력에 대한 욕구는 주관적으로는 정당하지만 공적으로는 난처한 것이라고 느껴야 하며, 자기 혼자만 그 제품의 뛰어난 기술적인 면을 통해 멋진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적, 성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느껴야 한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본인, 제품, 가상의 추종자 집단 사이의 신호전달 공모에 가담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하고, 이 공모가 짜릿하고 기발하고 관습을 거스르는 것이며, 심지어는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 자체를 전복시키는 것이라고까지 느껴야 한다.
133
최근의 <보그>지에 실린 '글램 샤인 대즐링 플럼핑 립컬러'라는 로레알 립스틱 광고는 '독특한 마이크로 크리스탈 기술'을 과대 선전하면서, 이 립스틱은 '수분을 듬뿍 머금으면서도 끈적거리지 않게 하는 제조법을 도입함으로써, 입체적으로 반짝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도톰하고 건강한 입술을 만들어준다'고 주장했다. 이 숨 막힐 듯한 테크노 관능주의를 더 정직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이 립스틱은 당신의 필사적인 육욕과 임박한 배란을 알려줍니다. 섹스에 물린 남편뿐 아니라 이웃 남성들과 집안 하인들에게까지." 하지만 그런 직접적인 언어는 어쩌다 한 번씩 <보그>를 읽는 남편과 십대 자녀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결혼 생활과 가정의 화목을 위해 주류 매체에 실리는 '품위 있는' 광고는 조심스러운 지위 추구와 성적 교성을 제품 홍보 뒷면으로 친절하게 감춘다. 결혼한 소비자들은 자신이 신호전달 효과 때문이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을 위해 명품을 구매하고 있다고 서로를 속일 수 있다.
(...)
가장 중요한 것들은 말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적응도를 뽐내는가>
141
동물들이 과시를 하기 위해 신체 형질이나 행동을 이용할 때, 우리는 이 신체 형질이나 행동을 핸디캡, 값비싼 신호, 성 장식물, 혹은 적응도 지표라고 부를 수 있다. 적응도 지표들은 광고인 동시에 보증서 기능을 한다. 즉 적응도 지표들은 자질을 선전할 뿐 아니라 그것을 보증한다. 적응도 지표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만들기 어렵고 날조하기 어려우면 주목을 끌고, 너무 값싸고 간단하고 날조하기 쉬우면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145
인간의 진화에서도 타인을 판단하는 능력이 개선됨에 따라 타인을 속이는 능력도 개선되면서, 사회적 판단과 사회적 위장 사이의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군비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150
대부분의 광고에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형질과 기업이 등록한 브랜드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내고 학습시키는 일이다. 수익성은 모두 여기서 나온다.
151
광고를 보는 사람은 자신이 과시하고 싶어 하는 형질이 광고 속의 그 브랜드와 논리적 관계, 혹은 통계적 관계가 있다고 믿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에서 그 광고를 보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관계를 알아볼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된다.
(...)
따라서 모든 광고는 사실상 두 부류의 청중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제품의 잠재적 구매자이고, 또 하나는 그 제품의 소유자가 다양한 매력적인 형질을 갖고 있다고 믿을 잠재적 구경꾼이다.
<과시적 낭비, 과시적 정확성, 과시적 평판>
171
(19세기 미국의 목사 엘리어스 루트 비들) "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의 절반은 무언가를 실제 모습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이다."
178
인간이 디자인한 제품들도 대부분 어느 정도는 지위 배지에 의존한다. 우리는 이것을 브랜드라고 부른다. 브랜드 이름과 로고는 대개 낭비가 적고 크게 정확함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상표법과 사내 변호사, 화물 조사원들에 의해 배지로서 적극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 진화가 배지를 만들고 알아차리는 유전자를 확산시키고 정확성을 강제함으로써 배지를 신호 체계로 만들어가듯, 기업은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를 높이고 브랜드와 양의 상관관계를 만들고 브랜드 위조를 처벌함으로써 브랜드 자산을 만들어간다.
187
과시적 낭비에서 과시적 정확성으로의 변화는 소비가 점점 탈물질화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중량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크기가 아니라 복잡함을 통해 우월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189
값비싼 신호 이론은 브랜드 자산이 신호를 내보내는 사람 본인(제품의 실제 소비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호 수신자(타인의 제품 소비를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몸의 자기 브랜딩, 마음의 자기 마케팅>
195
오스카 와일드 "피상적인 사람들만이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
105
그저 '외모를 가꾸어주는' 화장품은 특허처럼 증거에 의거한 척도로 평가받을 수도 없고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대신 화장품 브랜드들은 주로 포장이나 가격으로 차별화를 꾀함으로써 나이, 부, 섹스를 허용하는 태도에서 각기 차이를 보이는 여성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여섯가지 차원의 개인차>
236
우리는 타인을 이용하려 할 때만ㅡ즉 속이고, 꼬드기고, 뭔가를 팔고, 훔치고, 전쟁을 벌일 때만ㅡ지능이 낮은 사람과 교류하는 쪽을 선호한다.
238
우리는 타인들에게 필요와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왜곡해 보여줌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인상 관리'이며,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에 걸쳐 획득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회적 기술이다.
<일반 지능>
276
일반 지능에 관한 아이러니한 사실 한 가지는, 평균적인 지능을 지닌 보통 사람들은 지능에는 개인차가 있다는 사실, 지능은 많은 영역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지능은 삶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반면,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은 일반 지능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강히 반대하고, 지능의 개인차, 일반성, 중요성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명문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특히 이런 가짜 겸손이 심하다. 이 사람들은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하고만 교제하기 때문에, 지능의 종형곡선의 폭넓은 부분이 이 사람들의 준거틀 바깥에 놓인다.
293
원래 간단한 구조였던 제품들조차 지금은 신뢰할 수 있는 지능지표가 될 만큼 엄청나게 복잡한 특성들을 갖추었다. 이런 '피처 크리프(feature creep 제어장치와 기능이 점점 늘어나고 복잡해지는 현상)'가 일어나는 것은 모든 신제품은 작년 모델과 달라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비자가 자신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제품을 무의식적으로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95
개인 투자자의 온라인 거래는 한 건당 비용이 약 10달러이기 때문에, 실시간 거래로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은 마이너스다. 그럼에도 많은 투자자들은 나름의 연구로 시장을 앞서려 한다. 왜일까? 그것이 스릴 넘치는 지능 게임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위험도가 높고 차입 자금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에서 나름의 연구를 토대로 일관되게 돈을 번다면, 다른 개미들 중 누군가는 돈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연구, 분석, 판단, 자기 제어가 당신보다 뒤떨어지는 탓이다. 이것은 포커에서 패가 센 것처럼 허세를 부려 성공하는 것과 같다. 당신의 뇌와 당신의 배짱이 그들을 이긴 것이다. 우리는 실시간 증권거래를 고삐 풀린 탐욕과 마초 근성(낮은 친화성)의 징후로만 볼 게 아니라, 값비싸고 위험이 높은 지능 지표로 볼 필요가 있다.
298
지능을 북돋우는 제품들은 더 높은 지적 지위와 창의성을 갈망하는 성년 초반의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이런 지능 촉진 제품들 중에는, 인간의 선사시대 뇌가 현대생활의 문제들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각종 생각 도우미들이 있다. 의사결정도우미(계산기, 스프레드시트, 기대효용이론), 시간 할당 도우미(시계, 달력, 다이어리), 의사소통 도우미(지도, 책, 전화, 이메일, 파워포인트), 사회적 상호작용 도우미(돈, 청구서, 수표, 직불카드)가 그런 제품들이다. 이런 제품들은 인지 기능을 돕는 목발과 같다.
<개방성>
309
진화 연구자들인 댄 페슬러, 데이비드 나바렛, 마크 셜러는 '질병 취약성 지각' ㅡ 감기, 감염, 전염병에 걸리기 쉽다고 개인이 스스로 평가내리는 것 ㅡ 으로 한 개인의 외래인공포증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기생충과 질병의 증상들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외래인공포증의 강도가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더 심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생충 적재량이 높은 지역에서는 개방성과 외향성이 낮을 것. > 기생충 적재량이 가장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개방성과 외향성에서 상당히 낮은 평균점수를 받았다!)
312
자신의 면역계가 취약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ㅡ 병자, 노인, 임신 첫 3개월째 여성들, 기생충 적재량이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 ㅡ 은 대개 기생충에 대해 더 강한 혐오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신 건강이 취약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 강한 문화적 혐오를 느끼고, 따라서 낮은 개방성을 보일 것이다.
318
개방성은 정서 안정성하고는 양의 상관관계도 음의 상관관계도 갖지 않는다. 높은 개방성은 가벼운 정신병과 상관이 있지만, 낮은 안정성은 신경증 ㅡ 불안, 걱정, 우울 ㅡ 과 상관이 있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높은 개방성에 높은 안정성과 높은 지능을 더하면 높은 창의성과 사회적 매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반대로 높은 개방성에 낮은 안정성을 더하면 높은 정신병 위험성이 나온다.
319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대단히 개방적인 사람들이 소비할 만한 정신병 유발 제품들을 무수히 제공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제프 눈, 살만 루슈디, 어슐러 르권의 소설. 벡, 트리키, 고릴라즈의 음악. 푸코, 데리다, 보드리야르에 관한 수업. 암스테르담의 브라운 카페와 텍사스주 오스틴의 물담배 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휴가. 버닝맨 페스티발. 위트니 비엔날레의 미술. 스페인 이비자 섬의 레이브 파티와 나이트클럽.
320
높은 개방성은 위험하고 값비싸고, 대개 부적응적이다. 높은 개방성은 오직 환경이 안전할 때(기생충 적재량이 적음, 해로운 밈의 비율이 낮음), 개인의 방어시스템(면역계, 정신 건강)이 특별히 강할 때만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지 않다면 후회하는 것보다 조심하는 게 낫다.
323
개방성이 낮은 소비자들은 기존의 특징과 디자인을 갖춘 기존의 제품에 만족한다. 이들은 쉽지 않은 소비자들이다. 새로움 자체에 높은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 개방성이 높은 소비자들은 훨씬 돈이 되는 시장인데, 이들은 흔히 얼리 어답터이며 패션 추종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로움을 앞세운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들의 개방성을 과시한다. 이들의 개방성은 소비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새로움의 추구, 유행, 패션을 추동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친화성>
350
1930년대 이래로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는 낭만적 의도와 배우자로서의 친화성을 나타내는 최고의 상징물이었다. 20세기 초반에 여성들은 한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파혼으로 금전적 손해를 끼친 남성에 대한 기소가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코패스에게 속아 넘어가서 약혼 기간 동안 성적으로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믿을 수 있는 신호가 부재한 이 틈으로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뛰어들었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슬로건으로 대대적인 판촉 활동을 벌였다. 다이아몬드 마케터들은 여성에게, 남성들에게 약속이 진심이라는 증거로 약혼반지에 두 달 치 월급을 쓸 것을 요구하라고 충고했다.
374
데이비드 브룩스 <보보스Bobos in Paradise> 2001
부르주아 보헤미안(보보스) 현상. 새로운 출세주의자들은 직장에서는 강박적으로 일하는 도뇌가 비상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퇴근하면 성격을 180도 바꾸어 관능적이고 환경을 걱정하는 게으름뱅이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 이들은 직장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분업의 가치들을 수용하고, 집에서는 자신이 먹을 파스타를 직접 만드는 것을 즐기는 척해야 한다. 통근 구간은 하나의 가짜 페르소나에서 그것의 정반대로 가는 실존의 전이 구역이다.
390
고급 브랜드 신제품을 체인점에서 정가를 다 주고 사는 것은 상상력이 부족한 소비자의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하고, 당신의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매는 이야기 가치가 낮다. 다시 말해 그 제품의 디자인, 출처, 획득, 사용과 관련해 이야기할 만한 흥미로운 사람, 장소, 사건들이 전혀 없다. 이러한 구매가 당신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오직 소비자로서의 소비 능력, 잘 속는 성향, 순응성, 의식 없음이다.